- 법조인 초대석 - 법무법인 대진 김민성 대표변호사
법조계는 흔히 냉철한 이성과 빈틈없는 논리의 세계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 법의 영역에 ‘사람의 마음’이라는 감성의 온기를 불어넣는 변호사가 있다. 법무법인 대진의 김민성 대표변호사는 “사건이 끝나면 사람이 남아야 한다”라는 확고한 철학을 내걸고 2019년 법무법인을 설립했다. ‘민성’이라는 이름의 가수(Singer)로도 활동하는 그의 이력은, 그 자체로 ‘이성’과 ‘감성’이라는 두 축이 어떻게 한 사람 안에서 시너지를 내는지를 증명한다. 그가 이끄는 법무법인 대진은 설립 6년 차라는 비교적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서울 본사를 비롯해 수원, 평택, 천안, 제주에 분사무소를 두며 전국적인 서비스망을 구축했다. 동종 업계 매출액 기준 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로펌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 비결에 대해, 김 대표변호사는 망설임 없이 ‘진정성’이라 답한다. 그는 단순한 승소를 넘어 의뢰인이 그 소송을 통해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을 파악하고, 그 목표를 위해 함께 뛰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이러한 고객 중심 철학은 최근 국내 체류 외국인을 위한 러시아어 법률 서비스를 개시하고, AI 시대를 대비해 선제적 정보제공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끊임없는 혁신의 동력이 되고 있다. 냉철한 법정의 검투사이자 따뜻한 무대의 싱어송라이터. 그 상반된 매력의 중심에서 만난 김민성 대표변호사에게 법과 인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무법인 대진의 설립 이념인 “사건이 끝나면 사람이 남아야 한다”라는 말은 김민성 대표변호사의 경영 철학이자, 그가 의뢰인을 대하는 모든 자세의 근간이다. 2013년 개인 법률사무소를 연 이후, 그는 혼자서 다양한 분야의 사건을 처리하며 명확한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변호사가 모든 영역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발휘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 변호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건을 맡았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많이 느꼈습니다. 의뢰인에게 최상의 결과를 안겨드리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변호사들이 유기적인 팀을 이루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그렇게 2019년, 김 대표변호사는 뜻을 같이하는 변호사들과 함께 법무법인 대진의 문을 열었다. 서울, 수원, 제주에서 동시에 출범한 대진은 이후 평택, 천안 등으로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며 견실한 성장을 이어왔다.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설립 초기,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사세를 확장하던 시기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예기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코로나가 생각보다 훨씬 길어지면서 정말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회사가 성장하고 있었기에 공격적으로 투자를 단행했는데, 그 시기가 맞물렸죠. 그때 경영자로서의 판단이 미숙했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고객을 향한 진정성’이라는 본질만큼은 놓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진정성’이라는 나침반으로 법률 서비스의 새길을 열다
그가 말하는 진정성은 구체적인 고객 서비스 시스템으로 발현된다. 김 대표변호사는 요즘 ‘고객 경험 시스템 강화’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
“이혼, 교통사고, 성범죄 사건처럼 일상에서 자주 발생하는 사건들은 의뢰인들이 공통으로 궁금해하는 지점이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소송은 처음 겪다 보니 절차 자체에서 오는 불안감이 크죠. 저희는 이런 궁금증 데이터를 취합해 상황에 맞게 선제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뢰인이 작성해야 할 서류가 있다면 모범적인 샘플을 제공해 작성을 돕고, 향후 진행될 절차에 대해서는 미리 안내 동영상을 제작하여 배포하는 식이다. 고객이 불안을 느끼기 전에 먼저 다가가 궁금증을 해소해 주는 것, 이것이 법무법인 대진이 내세우는 ‘고객 친화적 법무법인’의 핵심이다. 이러한 혁신은 비단 내국인에만 그치지 않는다. 법무법인 대진은 최근 가장 역동적인 시장 중 하나인 ‘국내 체류 외국인’ 법률 시장으로도 눈을 돌렸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낮아지면서 외국인 노동력 수급이 필수가 되었습니다. 특히 농촌이나 공장 지대에 가면 외국인 근로자분들이 정말 많죠. 사람 사는 곳에는 반드시 법률 서비스 수요가 발생합니다.”
김 대표는 지난해 러시아어 법률 서비스를 신규 오픈했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구소련 국가(‘스탄’ 국가들) 출신 체류자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다. 그는 직접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시장 조사를 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분들은 법률 지식이나 언어의 장벽 때문에 사회적 약자가 되기 쉽고,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희는 이분들이 겪는 비자 문제, 임금 체불, 각종 분쟁 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단순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을 넘어, 사회의 필요성을 채우고 그분들을 돕는다는 사회 공헌의 의미도 있습니다.”
그는 베트남 시장 역시 꾸준히 주시하고 있지만, 이미 대형 로펌들이 선점한 시장인 만큼 철저한 준비를 거쳐 진출할 계획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냉철한 변호사, 감성적인 가수…두 개의 정체성을 아우르다
김민성 대표변호사를 설명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바로 ‘가수’라는 정체성이다. 그의 이력은 다소 독특하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미술을 공부하다 대학 진학 시점에 인문계로 방향을 틀었고, 대학 시절에는 음악에 심취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우연히 오디션을 봤는데, KBS 2FM 가요제에서 Top 8에 들어 앨범을 냈습니다. 그때 ‘나에게 재능이 있나?’라는 착각에 빠졌죠.(웃음) 그 길로 작사 공부도 하고, JK 김동욱 씨의 앨범에 작사가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공연도 하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팀으로 데뷔할 기회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화려한 무대 대신 치열한 법조인의 길을 택했다. 당시 해외 데뷔는 밑바닥부터 팬을 모으는 소극장 공연 위주였는데, 그 과정이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스스로 ‘재능의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이걸로는 밥 벌어먹고 살기 쉽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섰습니다. 그때 제 자신의 능력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고민했고,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에 매력을 느껴 진로를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극적인 ‘터닝 포인트’를 거쳐 변호사가 되었지만,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변호사 개업 초창기, 시장이 좋아 수익률이 안정되자 그는 ‘먹고 살 만하니 딴생각이 났다’라며 웃었다. 2013년 개인 사무소 개업 이후, 그는 ‘부티크 KM’이라는 엔터테인먼트사를 설립하는 데 투자하며 오랜 꿈이었던 가수 활동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싱어송라이터 ‘맥 켈리’와의 인연이 결정적이었다.
“맥 켈리 덕분에 앨범도 제작하고, 뮤직비디오 촬영, 방송 출연, 공연까지 학창 시절에 꿈꿨던 활동들을 마음껏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경험 미숙과 정보 부족으로 수익을 보진 못했지만, 그 실패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더 탄탄한 운영 구조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날카로운 변호사와 감성적인 가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정체성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그는 ‘몰입’이라고 답했다.
“사람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그저 주어진 역할에 맞게 그 면모를 꺼내어 쓸 뿐입니다. 역할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이죠.”
두 개의 정체성은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변호사 업무는 법의 논리에 따라 분석적으로 사안에 접근해야 하기에, 때로는 ‘너무 냉정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음악 활동은 그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정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덕분에 의뢰인의 상황에 더 깊이 공감하는, 조금 더 따뜻한 변호사로 변모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반대로 변호사라는 직업이 가수 중에는 워낙 특이하다 보니, 제 인지도에 비해 더 많은 방송이나 무대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최근에도 그는 원주 MBC에 가수로 출연해 라이브 무대를 선보이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 MAMA나 ‘유희열의 스케치북’ 같은 큰 무대를 꿈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목표가 바뀌었다.
“아주 조그만 무대에서 소수의 관객이 계시더라도, 그분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수준의 가수로 성장하는 것이 지금의 목표입니다.”
‘포기 전까지 가능성은 존재한다’, 변호사 1세대의 도전과 원동력
늦지 않은 나이에 법조계에 입문했지만, 그는 로펌에서 1년 남짓 실무 수습을 마친 뒤 곧바로 개업의 길을 택했다.
“소속 변호사로 있을 때도 한 달에 한 건 이상은 제 사건을 직접 수임해 왔습니다. 제가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조직 안에 머무르는 것보다 제 이름으로 부딪혀야 성장 곡선이 더 가파를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은 ‘포기하기 전까지 가능성은 존재한다’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는 ‘철저하게 계획하고 우직하게 행동’하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았다. 이러한 집요함과 밀도 있는 노력은 그가 어떤 분야에 있든 빠르게 성과를 내는 기반이 되었다.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매우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그 매력만큼이나 고되고 힘든 직업임을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변호사는 법이라는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검투사’와 같습니다.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막중한 책임감이 따릅니다. 법조인을 꿈꾸는 청년들이 있다면, 이 직업의 화려함 이면에 있는 높은 업무 강도를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강한 책임감을 가졌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보길 바랍니다.”
그는 AI 시대의 도래가 변호사의 역할을 위협할 것이라는 세간의 우려에 대해서도 명확한 견해를 밝혔다.
“지금도 많은 변호사가 AI를 활용하고 있지만, 공통으로 하는 말은 AI가 변호사를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AI는 리서치나 내용 정리 등 신입 변호사나 직원의 업무를 획기적인 속도로 처리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전략을 수립하고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결국 변호사의 몫이다. AI가 내놓은 결과물이 법리적으로 치밀한지, 할루시네이션(환각)은 없는지 검증하는 과정은 필수적이다.
“다만, 초급 변호사의 업무가 AI로 대체되면서 변호사 사회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입 변호사들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아질 수 있죠. 하지만 경력 변호사의 핵심 역량은 AI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으로 남을 것입니다.”
“성장을 넘어 ‘이익률 제고’로, 전국 서비스망을 꿈꾸다”
법무법인 대진의 대표로서, 그는 이제 외형적인 성장을 넘어 내실 있는 경영을 고민하고 있다.
“설립 이후 공격적인 확장과 M&A를 통해 매출 규모는 업계 상위권으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익률이 다소 떨어지는 미숙함이 있었죠. 지금은 ‘이익률 제고’에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회사의 체질을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전략적 변화다. 무조건 고용 변호사 수를 늘리기보다, 각 분야에서 ‘전투력’을 갖춘 파트너급 변호사를 영입해 시너지를 내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있다.
“전투력이란 곧 집요함과 치밀함입니다. 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기, 그리고 고객에 대한 서비스의 강도죠. 학벌이나 스펙보다는 그런 실질적인 역량을 갖춘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법무법인 대진을 ‘전국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로펌’으로 만드는 것이다. 현재의 5개 지사를 넘어, 내년에는 인천이나 부천 지역에도 추가 지사 설립을 계획 중이다. 각 지역의 검증된 파트너 변호사들과 함께 ‘법무법인 대진’이라는 브랜드를 공유하며, 어느 지역에서든 동일한 고품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가 그리는 청사진이다.
인터뷰 말미에 의뢰인들에게 어떤 법무법인으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진정으로 의뢰인을 위해 싸워준 유능한 법무법인.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가수의 꿈을 꾸던 청년에서, 수십 명의 조직원을 이끄는 로펌의 대표가 되기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사람’과 ‘진심’이었다. ‘사건이 끝나면 사람이 남아야 한다’라는 그의 철학이 법조계에 더 따뜻하고 단단한 신뢰를 쌓아 올리길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