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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영관 이사장 “한국 소재 산업의 산증인, 이제 노벨상 꿈나무 키우는 ‘과학의 가교’가 되다”

  • 이준영 기자
  • 입력 2026.01.2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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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ower lnterview -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영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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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산업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소재 산업의 기틀을 닦고, 오늘날 첨단소재 강국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 있다. 바로 이영관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 이사장이다. 1973년 삼성그룹 제일합섬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도레이첨단소재의 회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무려 53년이라는 시간 동안 현장을 지켜왔다. 단순히 한 기업의 성장을 이끈 경영인을 넘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샐러리맨 신화의 주인공으로 불리는 그는 이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재단 이사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2018년 재단 설립 당시부터 진두지휘를 맡아온 그는 과학기술 발전이 곧 국력이라는 과학 보국(報國)’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특히 한국 최초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배출을 생애 마지막 사명으로 꼽는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청년 경영자 같은 뜨거운 열정이 서려 있다.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에서 만난 이영관 이사장은 53년 경영 인생에서 얻은 혜안과 함께,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해 깊고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1973, 청년 이영관이 제일합섬의 문을 두드렸을 때 대한민국은 산업화의 초입에 서 있었다. 화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척박한 땅에서 소재 산업의 싹을 틔우는 것이었다. 당시를 회상하며 그는 나에게 일은 곧 인생이었고, 일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 내 삶의 전부였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히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이 아니었다. 어떤 일을 하든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매사에 최선을 다했다. 이러한 몰입은 그를 최장수 전문경영인의 반열에 올렸고, 오늘날 도레이첨단소재가 글로벌 소재 전문기업으로 우뚝 서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이사장은 53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퇴임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실감 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평생을 한 회사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해왔기에 몸은 재단에 있어도 마음은 늘 현장과 연결되어 있다라는 그의 말에서 조직에 대한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 그는 경영 실적과 관계없이 지속 가능하고 장기적인 공헌 활동을 고민하던 중, 소재 기업의 뿌리인 과학기술에 보답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이 바로 20181,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인가를 받아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이 출범하게 된 배경이다.

재단은 매년 화학 및 재료의 기초와 응용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세운 과학자 2명에게 각각 1억 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과학기술상을 운영한다. 또한, 잠재력 있는 연구자들에게 3년간 총 15천만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펠로십제도는 과학계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이공계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후원까지 더해져, 재단은 명실상부한 한국 과학계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이론 없는 경험은 위태롭고, 공부하지 않는 리더는 조직의 미래를 망친다

이영관 이사장을 수식하는 수많은 단어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습이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공부하는 경영자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50대 중반에 고려대학교 경영학 석사 과정에 도전하고, 이어 60대의 나이에 홍익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왜 그토록 배움에 집착했을까?

현장에서 30년 넘게 일하면서 체득한 경험은 분명 귀중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이론적 틀이 없는 경험은 자칫 독단으로 흐를 위험이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옳은지,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서 나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한지를 끊임없이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대학원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10시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새벽 1시가 넘는 고된 일상이었지만, 그날 배운 내용을 자신만의 언어로 정리하기 전에는 절대로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이러한 철저함은 그가 내리는 경영 판단에 논리적 근거를 더해주었고, 직원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때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했다.

그는 “TOP이 솔선수범해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야 조직원들도 자기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라고 강조한다. 조직의 총합은 결국 개개인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학구적인 자세는 재단 운영에서도 빛을 발한다. 함께 심도 있게 의견을 교환하며, 한국 과학계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특히 그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당장 돈이 되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기초과학의 탄탄한 토대입니다. 우리 재단이 펠로십을 통해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를 장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이사장의 시선은 일본의 사례로 향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20명이 넘는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습니다. 도레이 본사가 운영하는 과학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은 과학자 중에서도 6명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죠. 우리 재단은 이제 9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우리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이 훗날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과학상 주인공이 되는 것을 생생히 꿈꿉니다. 그것이야말로 제가 재단 이사장으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영예입니다.”

 

위기를 돌파하는 정직의 힘주인 정신으로 일궈낸 흑자 전환의 기적

그의 경영 인생이 늘 탄탄대로였던 것은 아니다. 1999IMF 외환위기 당시, 회사는 약 300억 원의 적자 회사였다. 당시 모든 기업이 구조조정과 인원 감축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이 이사장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다. 바로 정직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공법이었다.

당시 우리에겐 자금도 부족했고, 기술력도 세계 수준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직원들의 역량을 믿었습니다. 노동조합을 찾아가 회사의 경영 상황을 가감 없이 공개했습니다. ‘지금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하면 우리 모두에게 미래는 없다. 하지만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지금 위기도 돌파하고 앞으로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설득했죠.”

그의 진정성은 통했다. 노조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앞장섰고, 이 이사장은 이를 근거로 일본 도레이 본체를 설득해 파격적인 투자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그가 강조한 핵심 가치는 주인정신이다. 그는 지금도 후배들에게 월급쟁이라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조언한다.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공정의 작은 문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원가를 줄일지, 어떻게 하면 품질을 높일지 스스로 고민하게 되죠. 주인 정신을 가지면 일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됩니다.”

그는 53년 동안 한 번도 회사를 남의 집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이러한 태도가 위기 상황에서 전 직원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구심점이 되었고, 적자 회사를 불과 몇 년 만에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또한 선제적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이사장은 시장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비디오 필름 시장이 저물고 디스플레이와 첨단 산업용 소재 시장이 열릴 것을 예측하고 가공 필름 라인을 선제적으로 연이어 증설했다. 그의 판단은 적중했고, 선제적으로 구축한 생산 라인은 도레이첨단소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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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경쟁력의 핵심인 과학 기술, 인재들이 공대로 모여야 미래가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큰 화두 중 하나인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 이영관 이사장은 깊은 우려를 표했다. 우수한 인재들이 오직 안정적인 전문직만을 쫓아 기초과학과 공학을 외면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국가 경쟁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일구었던 시기에는 전국의 수재들이 화공과, 전자과로 몰렸습니다. 그들이 밤낮없이 연구하고 제품을 만든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죠. 기초과학 분야의 인재 공급이 끊기면 국가의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그리고 재단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한다. 이공계 인재들에게 과학자로서 존중받고 경제적으로도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은 과학기술상과 펠로십 외에도 매년 이공계 대학생 30명을 선발해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적은 금액일 수 있지만, 우리가 이 학생들을 응원하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귀한 존재들이다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그는 특히 바이오, AI, 이차전지 등 미래 핵심 산업 분야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기초 소재 기술의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역설한다. 소재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만 번의 실패를 견뎌내는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이 이사장은 우리 젊은 과학자들에게 당장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과학은 정직합니다. 투입한 노력만큼 반드시 결과가 나옵니다. 다만 그 시간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걸릴 뿐입니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재단이 함께 견뎌주는 동반자가 되어주려 합니다.”

 

에이지 슈팅을 꿈꾸는 영원한 현역끝없는 도전이 아름다운 인생을 만든다

이영관 이사장의 일정표는 빼곡하다. 재단 업무는 물론이고, 다양한 대외 활동과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는다. 그를 지탱하는 힘은 다름 아닌 건강한 신체와 긍정적인 마음가짐이다. 그는 수준급의 골프 실력을 자랑하는 스포츠 애호가이기도 한데, 특히 골프를 대하는 그의 자세에서 평소의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저는 골프장에 가면 절대로 전동 카트를 타지 않습니다. 18홀을 도는 동안 약 15천 보를 직접 걷습니다. 육체적인 건강도 챙기지만, 걷는 시간 동안 수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온을 찾습니다.”

그의 인생관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나눔이다. 평생을 일구어온 성공의 경험을 후배 경영인들에게 전수하고, 재단을 통해 얻은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말한다.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돈을 잘 쓰는 것은 예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은 한국 과학기술의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데 아낌없이 쏟고 싶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인들과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연구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입니다. 여러분의 도전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습니다. 한국도레이과학진흥재단은 여러분의 꿈이 결실을 맺는 그날까지 가장 든든한 후원자로 남겠습니다.”

그의 삶은 증명하고 있다. 은퇴는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사명을 향한 새로운 시작임을, 그리고 꿈을 가진 자에게는 세월도 그 열정을 꺾을 수 없음을 말이다. 대한민국 소재 산업의 전설 이영관 이사장, 그의 과학 보국을 향한 행보는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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