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성찰과 사유의 여적》 김용섭 저자 “법은 인문의 뿌리에 닿을 때 비로소 온전한 규범이 된다”

  • 이준영 기자
  • 입력 2026.08.02 15:56
  • 글자크기설정

  • 저자 인터뷰 - 《성찰과 사유의 여적》 김용섭 저자

김용섭님(프로필 사진).jpg

법학자의 저서에 추도사와 묘갈명(墓碣銘)이 실리고, 비교만필, ()와 법정책 비평이 나란히 놓인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행정법학을 전공하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독일 만하임대학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법제처 공직 생활을 거쳐 경희대 법대와 전북대 로스쿨에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한 김용섭 저자가 세 번째 에세이집 성찰과 사유의 여적(餘滴)(한누리미디어)을 펴냈다. 2020년 불교문학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도 등단한 그는 사십 년 넘게 행정법학자와 현장 실무가인 변호사의 두 길을 함께 걸어왔다. 법과 인문학의 경계를 허물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을 지닌 김용섭 저자를 만나 이번 책의 의미와 법학, 그리고 삶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성찰과 사유의 여적은 제목 그대로 법학자로서 평생 천착(穿鑿)해 온 사유의 여백에 남은 물방울 같은 기록이다. 여적(餘滴)이란 붓글씨를 쓰고 난 뒤 붓끝에 남은 마지막 물방울을 뜻한다. 이 책은 2024년 정년 기념으로 출간한 직필과 객설(법률신문사)2025년 펴낸 법과 인문학의 길(경인문화사)의 궤적을 잇는 세 번째 에세이집이다. 세 권을 합친 분량만 1,000쪽 남짓에 달한다. 요즘처럼 책을 멀리하고 쇼츠 영상에 익숙한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자기 안에 쌓아둔 기억의 저장고와 콘텐츠가 중요해진다고 그는 강조한다. AI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문제의식이 있어야 하고, 좋은 질문을 던지려면 관심사가 풍부하며 식견이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AI를 앞에 두고도 활용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 결국 지식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하는 세상이 되어간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책은 국한문 혼용으로 쓰여 원문을 읽는 재미도 함께 느낄 수 있으며, 조문과 논리 사이사이에 다양한 장르의 글이 채워져 종합 선물 세트 같은 구성으로 관심 가는 부분만 골라 읽어도 무방하다.

 

책의 본문은 제1부 법과 인문학의 교차로와 제2부 가산만필(佳山漫筆)로 나뉘며 8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터뷰와 대담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법 정책 비평과 스승과 선학에 대한 추도사, 선친을 기리는 묘갈명, 비교만필과 시, 그리고 WADA 총회 참관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구성이 특징이다. 가산(佳山)은 저자의 아호 가운데 하나로, 가산만필이라는 코너는 조선시대 문장가 계곡 장유의 계곡만필과 서포 김만중의 서포만필에서 형식을 차용한 것이다. 큰딸의 결혼식 8주년 기념일인 324일에 맞추어 발간했으며, 내년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외손자와 9월 첫돌을 맞는 손녀딸이 망망대해와 같은 삶을 헤쳐나가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기를 바란 할아버지의 문화적 유산이기도 하다.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법은 결코 인문과 분리된 차가운 논리 체계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역사, 정서를 품어야 비로소 온전한 규범이 된다는 것입니다. 법학이 인문학적 사유를 놓치는 순간 그것은 딱딱한 조문의 나열에 그치고 맙니다.”

 

이 책에서 그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차별화된 요소로 꼽는 현장성이다. 서재에 앉아 이론만 다듬어온 학자가 아니라 국내외 여행과 실제 소송과 조정, 스포츠 국제회의, 입법 자문의 현장을 오래 겪어온 실무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글만으로는 깊은 의미를 반추할 수 없어 고전 한문의 어휘와 동양 고전의 전거를 즐겨 인용하며 격조 있는 고어(古語)의 맛을 되살리려 한 것도 저자 나름의 시도로, 독자가 잠시 멈춰 서서 그 뜻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성찰과 사유의 여적.jpg

 

태몽이 알려준 듀얼(Dual)적 삶이론과 실무, 법학과 인문학을 함께 품다

저자가 법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 계기를 묻자, 그는 태몽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께서 우물가 나무에 머리 둘 달린 용을 본 뒤 자신을 낳으셨다고 하셨다. 음력 24일 병진(丙辰)일 생이라 붉은 용의 날에 태어난 것도 맞는데, 그래서인지 늘 하나에 만족하지 못하고 두 개를 동시에 품고 가는 듀얼적인 삶을 살아온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면서 이론과 실무 양쪽의 길이 동시에 열렸고, 독일 만하임대학교에서는 이론에 천착했다면 법제처와 변호사 활동을 통해서는 실무를 터득했다. 그렇게 이론과 실무를 오가며 자연스레 양손잡이처럼 두 영역을 함께 다루는 법을 익혀온 셈이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독일 유학 시절 지도교수인 만하임대 총장을 지낸 로엘레케(Gerd Roellecke) 교수님을 학술대회에 초청한 후 차량으로 모시고 경주, 안동, 합천 해인사를 함께 여행했을 때였다. 교수님께서 한국에 이렇게 찬란한 문화 전통이 있는데 왜 멀리 독일까지 유학을 왔느냐고 하셨다. 처음에는 덕담으로 들었지만, 나중에 곱씹어보니 자신의 역사와 뿌리로부터 학문을 시작하라는 당부였음을 깨달았다고 그는 전한다. 40대 중반부터 문··철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추사 김정희의 문예 정신에 심취하였고, 그 후 유불선을 아우르는 우리의 전통사상, 특히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으로 이어지는 학맥에 깊이 빠져들게 된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이 경험이 법과 인문학에 관한 칼럼을 법률신문, 법조신문, 뉴스퀘스트 등 각종 매체에 기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행정법학회 제7대 회장을 지냈으며, 목촌 김도창 박사, 정현 박윤흔 박사, 청담 최송화 교수를 이 책에서 깊이 조명한 것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학문의 계보를 기록해 두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고 그는 밝혔다. 후학들이 오늘의 행정법학이 어떤 선학들의 고투(苦鬪) 위에 서 있는지를 되돌아보고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글들이다. 2020년 불교문학 신인상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스무 편 남짓의 시를 발표했으며, 평론 형식이지만 올해 6월 지구문학 114호에 구봉 송익필의 <족부족>과 신독재 김집의 <차족부족>을 잇는 <복차족부족>이라는 한시(漢詩)를 발표하기도 했다.

 

법치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다AI 시대, 문제의식에 기반한 좋은 질문이 새로운 역량이다

성찰과 사유의 여적에는 날카로운 현안 비평도 담겨 있다. 검찰청의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법 개정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 등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밀어붙이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한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것이 개악으로 귀결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아왔다며, 한번 무너진 사법 시스템은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대법원 국선변호인으로서 상고이유서 제출에 더해 위헌 제청 신청까지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법률신문 등에 시사적인 법 정책 이슈에 대한 기고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 초부터 뉴스퀘스트에 격주로 김용섭의 비교만필을 연재하며 동서양의 문화와 제도를 견주어 보는 인문학적 시각으로 시사 문제들을 짚어내고 있기도 하다.

 

로스쿨 교육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법학 교육이 지나치게 변호사시험 합격이라는 단일 목표에 수렴되면서 법학적 사유의 깊이와 인문학적 소양을 함께 길러주는 교육이 오히려 위축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AI 시대에는 방대한 판례와 자료를 순식간에 찾을 수 있으니, 이제 암기형 교육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그는 강조한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문제를 발견하는 창의형, 질문 제기형 교육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야 하며, 문제의식을 갖고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AI 시대에 법률가와 학자에게 요구되는 새로운 역량이라는 것이다. 스포츠법과 ADR 분야에도 20년 넘게 천착해 왔으며, 국회 입법지원위원, 법제처 법제 편집위원장, 대한변협 법제위원, 영산법률재단 이사, 만해사상실천연합 법인이사와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제재위원,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비상임 조정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를 이렇게 정리했다. 법을 다루되 법만을 생각하는 고루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잊지 않았던 법률가로, 그리고 법의 테두리에만 머물지 않고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성찰과 사유의 끈을 놓지 않았던 문필가로 기억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말했다. 법과 인문학의 융합은 기술 문명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져도 그것을 다루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람을 이해하려면 역사와 문화, 철학이라는 인문학적 토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 월간리더스 & kleaders.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성찰과 사유의 여적》 김용섭 저자 “법은 인문의 뿌리에 닿을 때 비로소 온전한 규범이 된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