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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먼저입니다(6) 까다로운 상대의 입을 여는 법

  • 정진이 대표 기자
  • 입력 2026.10.02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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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lumn - 정진이의 리더스 칼럼

살다 보면 대화의 시작부터 단단한 벽을 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팔짱을 굳게 끼고, 턱을 살짝 든 채, 어디 한번 해 보라는 식의 눈빛을 보내는 사람들. 그들은 상대방의 말을 쉽게 끊고, 사사건건 약점을 찌르며, 대화의 주도권을 오직 자신만이 쥐어야 직성이 풀리는 듯 행동한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위축되거나, 반대로 지지 않기 위해 전투태세를 갖추게 된다.

 

필자는 긴 세월 수많은 대화의 현장에서 부딪히며 깨달은 진실이 있다. 까다롭고 오만한 상대를 내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것은 상대방을 억누르거나 논리로 굴복시키는 과정이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오히려 내 이야기를 삼키고 상대의 서사에 온전히 밑줄을 치며, 그들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적 공간 창출에 가깝다.

 

한 중견기업의 회장과의 인터뷰는 특별하게 기억이 난다. 업계에서 수십 년을 군림해 온 분이었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했다. 그가 마주 앉자마자 꺼낸 첫마디는 단호했다.

 

“제가 인터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아시죠? 기사가 나와도 바뀌는 건 없더라고요.”

 

보통이라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달래거나, 준비한 질문지를 빠르게 꺼내 들며 분위기를 전환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수첩을 내려놓고 그를 천천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씀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업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버텨 온 분이 무엇을 다르게 봤는지가 진심으로 궁금해서 왔습니다.”

 

그가 예상치 못한 표정으로 필자를 보았다.

 

설득당하거나 반박당한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결의 말을 받은 사람의 눈빛이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팔짱을 풀었다.

 

“뭘 알고 싶은데요?”

 

그 한마디로 대회가 열렸다. 두 시간이 지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처음으로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다음에 또 얘기할 게 생기면 연락하시죠.”

 

기사가 나와도 바뀌는 건 없다던 분이, 스스로 다음을 약속한 것이었다.

 

까다롭거나 오만해 보이는 상대들은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다. 진짜로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이거나, 내면이 매우 불안하거나 억울한데 그것을 강한 오만함으로 가리는 사람이다. 긴 대화의 최전선에서 경험한 바로는 십중팔구 후자였다. 그 억압된 인정 욕구를 진심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 먼저다. 아첨과 인정은 다르다. 아첨은 상대가 단박에 알아채고 더 우쭐해지게 만들지만, 진정한 인정은 상대의 방어벽을 허물어뜨린다.

 

무관심으로 상대를 통제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중요한 업무 제휴를 위해 만난 한 파트너사 부사장이 그랬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고, 대답은 늘 한 박자 늦었다. 목소리를 높이고 더 화려한 데이터를 꺼낼수록 그는 더 지루해하는 기색을 보였다. 문득 페이스가 완전히 말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넘기던 자료를 탁 덮고 말을 멈췄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그가 스마트폰에서 눈을 뗐다.

 

“부사장님, 제가 멈춘 이유를 솔직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지금 제가 드리는 제안이 부사장님의 당면 과제나 관심사와 전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지금 부사장님 책상 위에 놓인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입니까?”

 

그는 헛기침하더니 멋쩍게 스마트폰을 뒤집어 내려놓았다.

 

“아, 티가 났나요. 사실 저희가 어제 갑작스럽게 대규모 조직 개편 통보를 받아서 정신이 없었습니다.”

 

무관심의 가면이 벗겨지고 진짜 현실이 튀어나온 순간이었다.

 

또 다른 자리에서는 어떤 기업인이 창업 초기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며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가 필자의 비슷한 경험을 떠올리게 했지만, 입을 열려다 참았다. 그냥 들었다. 3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났다. 그가 처음으로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그때 제일 힘들었던 건 아버지한테 말을 못 한 거예요. 아버지가 창업을 반대하셨거든요.”

 

인터뷰가 끝나고 그가 말했다.

 

“이 이야기는 처음 했어요.”

 

그 5분을 참은 것이, 그 이야기를 가능하게 했다. 내 경험을 꺼냈더라면 그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까다로운 상대를 내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 사람을 꺾고 이기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더 이상 자신을 증명하거나 방어할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편안한 공간을 먼저 내주는 것이다.

 

몇 해 전, 서른 살 차이가 나는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다. 한쪽은 임원이었고, 다른 한쪽은 갓 입사한 신입 직원이었다. 신입 직원이 요즘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그런데 두 문장도 채 지나지 않아 임원이 말했다.

 

“나 때는 말이야,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

 

신입 직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야기하던 흐름이 끊겼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네, 맞습니다”를 반복했다. 대화는 5분 만에 끝났다.

 

임원은 좋은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상대의 서사 위에 자신의 서사를 덮어씌우는 순간, 대화는 닫힌다. 진짜 공감은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가 충분히 자랄 수 있도록 공간을 지켜 주는 것이다.

 

정진이 대표 사진자료.JPG

정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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