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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와치스 홍성조 대표이사 “태극기부터 달과 독도까지, 한국의 이야기를 시계에 조용히 새긴다”

  • 이준영 기자
  • 입력 2026.11.0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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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ulture Leader - 해리엇 와치스 홍성조 대표이사

더 베일리 하우스 앞의 남성 복사.jpg

한국의 이야기를 시계에 담는 해리엇 와치스는 ‘해리엇(HARRIOT)’과 ‘폴 바이스(PAULVICE)’ 두 개의 시계 브랜드를 직접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다. 해리엇은 5년 가까이 새 시계를 내지 못하다 태극기를 담은 ‘기원(KI:WON)’으로 다시 시작했고, 올해 9월 출시한 ‘설월(雪月)’은 첫 생산분 300개가 한 달여 만에 완판됐다. 지금은 독도를 주제로 한 첫 다이버 워치를 준비하고 있다. 홍성조 대표를 만나 해리엇의 시계에 담긴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리엇은 한국의 이야기를 시계에 담는 브랜드다. 한국에서 디자인하고, 한국에서 만들 수 있는 부품은 한국에서 만들며, 조립도 한국에서 한다. 하지만 홍성조 대표는 그것이 핵심은 아니라고 말한다. 핵심은 한국 브랜드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시계를 만든다는 데 있다. 남북 정상이 마주 앉았던 도보다리, 누리호를 쏘아 올린 엔진, 한옥 처마에 걸린 달 같은 이야기는 한국 브랜드가 아니면 시계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작은 2016년이었다. 외국 브랜드를 들여와 소개할수록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자기 나라의 감성과 이야기로 시계 브랜드를 만들어 세계에 파는데,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시계는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에도 시계에 담을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고, 그것은 한국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는 2016년에 해리엇을 만들었다. 이전 법인은 정리했고, 2024년에 해리엇 와치스를 창업해 같은 브랜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키우고 있다.

 

해리엇_기원.jpg

 

한국의 이야기를 시계에 담는 브랜드 해리엇

디자인에는 원칙이 하나 있다. 이야기에서 출발하되, 이야기가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계는 매일 차는 물건인데,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노골적이면 부담스럽고 결국 서랍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리엇의 시계는 언뜻 보면 절제된 시계이고,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만 그 안의 이야기를 발견한다. 해리엇의 방향을 보여 주는 시계로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두 정상이 마주 앉았던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영감을 받은 ‘도보’ 에디션이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정식 계약을 맺고 누리호의 성공을 기원하며 만든 757개 한정 에디션도 있다.

 

항우연과의 협업은 해리엇이 어떤 브랜드인지를 가장 잘 보여 준다. 2018년 11월 홍 대표는 라디오에서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 뉴스를 들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자랑스러운 기관이 낯설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연락했다. 담당자에게 닿기까지 한 달이 걸렸고, 처음 구상부터 계약서에 서명하기까지는 석 달이 걸렸다. 수량 757개는 한국을 우주 강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75톤 엔진과 7톤 엔진의 숫자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만들지 않았다. 2022년 누리호는 실제로 우주에 닿았고, 그는 한국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그때 확인했다.

 

해리엇은 한동안 새 시계를 내지 못했다. 함께 브랜드를 만들던 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5년 가까이 멈춰 있었다. ‘기원(KI:WON)’은 그 공백 끝에 내놓은 첫 시계다. 다시 시작하며 가장 오래 고민한 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해리엇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무엇 때문에 해리엇을 좋아하는가였다. 답을 찾다 보니 해리엇이 처음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게 됐고, 그래서 5년 만의 첫 시계는 해리엇의 가장 근간이 되는 한국의 상징 태극기를 멋있게 담기로 했다. 이름 ‘기원’에는 두 가지 뜻이 함께 들어 있다. 하나는 시작을 뜻하는 기원(起源)이다. 해리엇의 출발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태극기에 담긴 대한민국의 기원을 시계에 담는다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바람을 뜻하는 기원(祈願)이다. 간절한 바람이 모여 시간이 된다는 마음을 담았다.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오래 붙잡은 질문은 태극 문양을 쓸 것인가, 건곤감리를 쓸 것인가였다. 빨강과 파랑의 태극 문양은 강렬하지만, 작은 다이얼 위에 그대로 올리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여러 번 시도했고, 멋진 시계여야 한다는 기준에 맞지 않아 모두 버렸다. 대신 건곤감리를 숨겼다. 태극기에서 건곤감리가 놓이는 바로 그 자리에 인덱스로 배치했고, 다이얼 중앙에는 작게 반복되는 건곤감리 패턴을 넣었다. 바깥쪽에는 무궁화 잎을 닮은 부채꼴 무늬를 둘렀다. 처음에는 태극기인 것을 알아채지 못하다가, 천천히 살펴보면 하나씩 보이도록 만들었다.

 

반응은 좋았다. 홍 대표에게는 판매보다 더 기뻤던 것이 있다. 태극기를 담았는데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드레스워치로 풀어냈다는 평을 많이 들은 것이다. 해리엇이 가려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 준 시계다.

 

해리엇_설월.jpg

 

눈 쌓인 한옥 지붕 사진 한 장에서 시작한 ‘설월’

설월은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다. 눈이 쌓인 한옥 기와지붕 사진이었다. 쌓인 눈에 햇빛이 비쳐 흰색도 하늘색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묘한 색을 내고 있었다. 그 색과 처마의 곡선이 잊히지 않아서 언젠가 이것을 시계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붕의 색은 다이얼이 되었고, 처마의 곡선은 창과 인덱스가 되었다.

 

설월은 달이 보이는 문페이즈 시계다. 보통의 문페이즈는 날마다 달의 모양이 바뀌지만, 설월의 달은 늘 보름달이다. 바뀌는 것은 달이 처마 위 어디에 걸려 있는가다. 달은 한쪽 처마 끝에서 떠올라 지붕 위를 건너 반대편 처마 뒤로 진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달 자체가 아니라 마당에 서서 처마와 함께 올려다본 달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절제된 드레스워치이고,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만 그 이야기를 발견한다.

 

달도 새로 그렸다. 부품에 원래 들어 있는 노란 달은 홍 대표가 본 달이 아니었다. 그가 기억하는 달은 달항아리처럼 희고 푸른 기가 도는 달이었다. 그달을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수십 년 다이얼을 만들어 온 사람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설득하고 방법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고, 오래 도와준 분들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 불을 끄면 바늘도 숫자도 사라지고 달만 남는다.

 

설월은 올해 9월 10일에 출시했다. 첫 생산분 300개가 한 달여 만에 모두 팔렸고 재생산에 들어갔다. 할인 없이 정가로, 예약판매 없이 판 결과라 더 의미가 있다. 설월은 홍 대표가 다시 시계를 기획하고 디자인할 시간을 되찾아 내놓은 첫 시계이기도 하다. 올해 3월 AI 도구를 쓰기 시작한 뒤 운영에 쓰던 시간이 줄었고, 그 시간에 다시 디자인하고 새 시계를 기획할 수 있었다. 그에게 AI는 이 일을 다시 할 수 있게 해준 도구다.

 

독도를 조용히 새긴 첫 다이버 워치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계는 독도를 주제로 한 해리엇의 첫 다이버 워치다. 홍 대표가 어릴 때는 어디서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말을 들었다. 노래도 있었고 캠페인도 많았다. 요즘은 예전만큼 독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가 덜 중요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외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방식은 오래 간직하는 물건에 조용히 새겨 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시계는 먼저 멋있는 다이버 워치여야 했고, 독도 이야기는 그 안에 숨겨 두었다. 베젤에 새긴 87.4km는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 땅인 울릉도까지의 거리다. 다이얼 6시 방향에는 독도의 두 섬과 위도·경도 좌표를 넣었다. 다이얼의 파도 무늬는 기계가 아니라 손으로 깎아 만든다. 자외선 불빛을 비추면 다이얼에 ‘독도’라는 글자와 울릉도를 향하는 화살표가 나타나고,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색은 독도 앞바다의 남색, 독도의 바위를 닮은 은회색, 그리고 비취색 세 가지다.

 

한국 사람에게는 반가운 이야기로, 한국 시계를 사는 외국 고객에게는 거부감 없이 전해지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 디자인은 확정했고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한때 세계 3대 시계 제조국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부품 공장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국내 시장의 99%를 외국산이 차지한다. 홍 대표는 답이 ‘어디서 만들었는가’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 생산지만으로는 스위스의 역사나 중국의 규모와 경쟁할 수 없고, 경쟁력은 ‘무엇을 담았는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해리엇의 전략은 그 안에서 자리를 좁고 분명하게 잡는 것이다. 한국의 이야기를 담은 시계는 한국 브랜드인 해리엇만이 만들 수 있어 그 자리에서는 경쟁할 상대가 많지 않고, 절제된 드레스워치라는 톤을 지키면서 오래 가는 브랜드로 키워 가겠다고 했다.

 

해리엇이 가려는 곳은 분명하다. 미국 하면 랄프로렌이 떠오르듯이 한국 하면 해리엇이 떠오르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 목표이고, 50년, 100년 가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가까운 목표는 1년 안에 해리엇 플래그십 스토어를 여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해리엇을 직접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한다. 홍 대표는 고객에게 오래 곁에 두는 시계, 한국의 이야기를 가장 잘 담아내는 브랜드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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