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에서 일어서는 순간, 우리는 대화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자료를 챙기고 다음 일정을 확인하면서 인사도 익숙한 말로 서둘러 마친다. 그러나 필자는 인터뷰가 끝난 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나 악수를 나누는 순간을 오래 기억한다.
공식적인 질문이 끝나고 나서야 “사실은요.”라며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몇 분은 남은 이야기를 들을 기회이자 오늘의 만남을 어떤 관계로 이어갈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몇 달 동안 이어진 광고 계약 협상이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던 때였다. 그날도 양쪽이 제시한 조건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같은 내용을 거듭 설명한 탓에 회의실에는 피로가 쌓였고, 양쪽 모두 짐을 서둘러 챙겼다.
필자는 그대로 돌아서면 다음 만남을 잡는 일부터 어려워질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합의하지 않은 내용을 좋게 포장할 수는 없었다. 아쉬운 결과를 인정하면서도 그날 얻은 것이 있는지 돌아보았다.
상대가 설명한 현장의 사정 가운데 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도 합의는 못 했지만, 말씀하신 그 부분 덕분에 제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됐습니다. 그게 오늘 저에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는 잠시 멈추더니 자신도 배운 것이 있었다고 답했다. 조건이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를 대하는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필자는 다음 회의에서 그 사정을 반영해 논의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진전이 있었고, 두 번의 만남을 더 거친 뒤 합의에 이르렀다. 그 결과를 마지막 한마디만의 힘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조건을 검토하고 보완한 시간이 있었고, 양쪽의 판단도 작용했다. 다만 그날 필자가 느낀 변화는 분명했다.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는 사람들로 헤어지는 대신, 서로의 사정을 조금 더 이해한 상태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결과가 아쉬운 날에도 오늘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전하는 법을 그 협상에서 배웠다.
이런 마무리는 막연한 칭찬과 다르다.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려는 생각만 앞서면 실제로 듣지 않은 내용을 보태거나, 동의하지 않는 주장까지 치켜세우기 쉽다. 그러면 다음 만남에서 말과 판단이 어긋난다.
필자는 감사할 대목이 있다면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려 노력한다. 배운 것이 선명하지 않은 날에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와 다시 확인할 내용을 남긴다. 좋게 끝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대화의 결과를 흐려서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책을 출간한 저자와의 인터뷰에서도 기억에 남는 마무리가 있었다. 약속한 한 시간이 지났는데 이야기는 이어졌다.
필자가 시계를 보자 그도 시간을 확인하고,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 필자는 어린 시절 동네 도서관 이야기를 할 때 그가 활짝 웃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도서관, 지금도 있나요?” 그는 도서관이 아직 그곳에 있으며 가끔 찾아간다고 답했다. 그 짧은 문답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그날 들은 이야기 가운데 필자의 기억에 남은 도서관에 관해 다시 물은 것이 자연스러운 끝인사가 됐다.
상대의 말을 기억한다는 것은 대화의 내용을 빠짐없이 암기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엇을 중요하게 말했는지, 어떤 부분에서 생각이 달라졌는지를 놓치지 않는 일에 가깝다. 업무 회의라면 서로 이해한 조건이 같은지 확인할 수 있고,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는 그가 관심을 둔 일을 다시 물을 수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멋진 표현보다 ‘정확성’이다. 상대가 말하지 않은 의도를 내가 대신 정리하거나, 아직 결정되지 않은 일을 확정된 약속처럼 전하면 오히려 오해를 남길 수 있다.
끝인사 뒤의 행동도 함께 살펴야 한다. 자료를 보내겠다고 말했다면 보내고, 확인 후 연락하기로 했다면 기한을 지켜야 한다. 일정이 바뀌면 사정을 설명하고 대안을 의논해야 한다. 짧은 인사에서 전한 관심은 이런 후속 행동으로 드러난다. 반대로 좋은 말로 헤어진 뒤 약속을 잊어버리면, 상대에게는 그 말보다 기다린 시간이 더 크게 남을 수 있다.
필자에게도 바쁜 일정 속에서 연락을 미룬 적이 있어, 감당할 수 있는 약속인지 먼저 살피려 노력한다.
대화를 마치기 전에는 말한 사람과 들은 사람이 논의 내용을 같은 뜻으로 이해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합의한 조건은 무엇이며 남은 쟁점은 무엇인지, 다음에는 어떤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할지 짧게 되짚는 것이다. 서로의 이해가 다르다면 그때 바로잡을 수 있다. 오늘 결론을 못 냈다는 이유로 논의 전체를 실패로 취급할 필요는 없다.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생기는지 알게 된 것 역시 다음 판단에 필요한 내용이다. 합의한 내용과 남은 쟁점이 명확해야 다시 만날 이유도 구체적으로 남는다.
오늘 누군가와 헤어질 때, 의례적인 인사에 앞서 실제로 남은 생각을 하나 떠올려 보면 어떨까. 상대의 설명 덕분에 새로 이해한 점이 있다면 말하고, 다음에 확인해야 할 일이 있다면 함께 정리하면 된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으면 억지로 의미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다만 대화의 마지막을 서류를 챙기는 시간으로만 흘려보내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 몇 분 동안 오늘의 말을 다시 살피고, 내가 맡을 일을 분명히 하는 것만으로도 다음 만남은 조금 더 믿을 만해질 것이다.

정진이
월간 리더스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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