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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권기찬 이사장 “문화로 삶을 빚고, 나눔으로 가치를 완성하다”

  • 정진이 대표 기자
  • 입력 2025.09.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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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ver Story -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권기찬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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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한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가. 여기,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그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나누는 것을 필생의 업으로 삼은 경영인이 있다. 1980년대 중반, 대한민국 명품 비즈니스의 문을 활짝 연 선구자이자, 30여 개가 넘는 해외 유수의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패션 산업의 지평을 넓힌 권기찬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이하 한문연) 이사장 겸 웨어펀 인터내셔널 회장이다. 그는 단순히 상품을 파는 것을 넘어, 그 안에 깃든 문화와 즐거움을 전파하는 것을 기업의 소명으로 삼았다. 그의 여정은 패션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국립미술관에 피카소 작품 한 점 없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사재를 털어 오페라 갤러리를 열었고, 40여 년간 수집한 300여 점의 미술품으로 최근 경기도 안성에 무료 미술관 뮤지엄319’를 개관하며 만인의 문화 향유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의 신념은 나눔봉사라는 두 개의 기둥 위에 굳건히 서 있다. 기업인으로서 이룬 성공을 사회에 환원하고,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통해 삶의 격을 높이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그의 철학은 20213, 전국 222개 문화예술회관을 아우르는 한문연의 이사장직을 맡으며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그는 전임 회장의 공석과 예산 삭감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서도 조직을 안정시키고, 성공적인 축제를 이끌며 리더십을 증명했다. 30대 청년 사업가 시절, 유럽의 상류 사회와 교류하며 배운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삶의 방식은 그의 인생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는 이제 그가 보고 느꼈던 품격 있는 삶, 예술과 함께 호흡하는 일상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자 한다. ‘카메라는 항상 당신을 따르고 있다는 신념으로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그의 삶은, 그 자체가 한 편의 잘 빚어진 예술 작품과 같다. 나눔의 철학으로, 소유가 아닌 공유로, 이윤을 넘어 가치를 추구해 온 권기찬 이사장을 만나 그의 삶과 경영, 문화와 예술에 관한 식견과 사상, 그리고 나눔의 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1980년대 초, 한 대형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던 30대 중반의 권기찬 이사장은 회사의 패션 사업 진출 임무를 맡아 1년에 30회 가까이 해외 출장을 다녔다. 그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서구인들에게 옷이 단순한 패션을 넘어 하나의 문화임을 깨달았고, 월급을 모아 발렌티노, 지방시 같은 명품을 직접 사 입으며 그들의 문화를 익혔다. 비록 회사의 프로젝트는 불발되었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문이 열렸다. 1986, 정부가 해외 패션완제품 수입 자유화 조치를 발표하자 그는 미련 없이 회사를 나와 유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국내 시장은 소위 보따리상들이 들여온 제품이 전부였지만, 그는 독일 명품 브랜드 아이그너와 정식 에이전트 계약을 맺으며 합법적인 명품 수입 유통의 시대를 열었다. 그때 창업했던 회사 이름이 WEAR(, 입다)+FUN(즐거움)을 합친 웨어펀 인터내셔널이다.

그의 나이 서른다섯, 어린 나이였지만 한국 시장의 잠재력을 내다본 혜안은 정확했다. 아이그너의 성공을 시작으로 그는 겐조, 소니아 리키엘, 베르사체, 콜롬보, 지안프랑코 페레, 아이스버그, 체루티 등 30여 개가 넘는 해외 브랜드를 연이어 국내에 소개하며 명실상부한 명품 시장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했다. 명품산업의 대부로 불리던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웨어펀 인터내셔널 창업 10년이 안돼 매출은 500억 원이 넘었고 성장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는 사업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했다.

창업한 지 3년 정도 지나고 나니 내가 왜 이 일을 할까?’라는 고민이 생기더군요. 제가 들여온 옷을 입고 즐거워하는 고객들을 보면서 사업하는 기쁨을 느끼던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선진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었어요.”

이러한 고민의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더 하우스 오브 컬처 앤드 펀(The House of Culture and Fun)’이라는 기업 슬로건이었다. 그는 이윤 추구를 넘어 사람들에게 문화와 즐거움을 제공하는 기업인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이 철학은 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의 모든 사업 영역으로 확장되었다.

 

명품 비즈니스를 넘어 문화와 즐거움을 전파하다

권기찬 이사장의 사업 여정은 필연적으로 예술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1990년대 초반, 유럽의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교류가 깊어지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수준 높은 문화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한국의 해외 바이어 접대 패턴은 한결같아요. 경복궁 구경시켜주고, 갈비 대접하고, 룸살롱 데려가는 게 끝이었거든요. 그런데 그들은 저를 음악회에 초대했어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죠.”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오페라 극장과 미술관에서 얻는 예술적 경험은 그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그는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을 느끼며, 예술을 즐길 줄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일류가 되는 길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는 그의 경영 철학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남다른 창의성이나 앞서가는 시민의식도 모두 수준 높은 문화적 소양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하는 그는, 우리 사회를 정서적으로 더 윤택하고 성숙하게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꿈의 첫 번째 결실은 2005, 서울 청담동 대로변에 문을 연 오페라 갤러리였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의 국립미술관에 피카소 그림 한 점 없다는 사실에 큰 안타까움을 느꼈다.

제가 볼 수 있는 피카소를 대한민국 사람 누구라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외국 여행 안 가고도 피카소 작품 볼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서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동기로 그는 오페라 갤러리 파리 본사와 50억 원을 공동 투자해 유한회사를 설립했다. 개관 당시 67억 원짜리 피카소 작품을 선보인 오프닝 파티에는 국무총리, 정치인, 정부 고위인사와 외국 대사 20여 명, 수많은 연예인과 기자들이 몰려들어 사설 갤러리 개관 행사로는 전례 없는 화제를 모았다. 그는 화랑들이 대부분 골목 안에 있던 시절, 과감히 월세 5,500만 원, 보증금 12억 원의 비싼 임대료를 감수하고 명품 거리 대로변에 갤러리를 열어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고객의 접근이 쉽게 만들었다. 이 덕분에 강남구청은 외국인 방문 시 첫 번째 방문 코스로 오페라 갤러리를 지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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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한 점 없던 나라미술관 문턱을 낮추다

오페라 갤러리를 통해 문화 나눔을 실천해 온 권 이사장의 오랜 꿈은 마침내 그 자신의 공간으로 완성되었다. 20241115, 경기도 안성시에 문을 연 뮤지엄319’는 그의 40여 년간의 열정과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다. 미술 작품 감상을 좋아했던 그는 세계 각지를 돌며 35년간 회화, 조각 등 300여 점의 작품을 꾸준히 수집해왔다. 그리고 언젠가 이 작품들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하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아내가 26년 전 땅을 사두고 15년 전 두 동의 건물을 지어둔 안성 부지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뮤지엄의 이름인 ‘319’는 이 땅의 옛 지번인 신령리 319번지에서 따온 것으로, 그가 이 공간에 부여하는 역사성과 애정을 짐작하게 한다.

모든 이에게 무료로 개방되는 뮤지엄319는 컨템퍼러리 뮤지엄을 지향하며, 개관 초기에는 6개월마다 새로운 작품으로 교체 전시할 계획이었으나, 아직 많은 사람이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에 당분간은 현재 전시를 유지할 예정이다. 개관 기념 전시회에서는 100호부터 600호에 이르는 대형 회화 작품 20점과 살바도르 달리 등 조각 작품 28점이 관람객을 맞고 있다. 그리고 미술관 옆의 독립된 공간인 카페 힐가텐에는 자택 서재와 회사 사옥에서 옮겨온 4천여 권의 책과 서가, 이탈리아에서 직접 수입한 가구, 손수 고른 식물 하나하나까지 그의 삶의 흔적과 취향, 즉 그의 아비투스(Habitus)’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는 인테리어 업체에 맡기면 너무 상업적인 카페가 될 것 같아모든 것을 아내와 함께 직접 꾸몄다고 말한다. 그는 커피만 마시고 미술관은 바쁘다며 그냥 가는 사람들을 보면 속상하다고 털어놓을 만큼, 이 공간이 더 많은 사람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나아가 그는 부지 내의 다른 건물들을 리모델링해 중앙대학교 미대생들의 졸업 전시회나 안성 지역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위기의 한문연을 이끌다, 기본과 원칙으로 신뢰를 회복하다

20213, 권기찬 이사장은 문화체육관광부 유관기관인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이사장으로 임명되며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한문연은 전국의 222개 문예회관을 회원으로 두고 예산 지원, 임직원 교육, 공연 콘텐츠 개발 등 국내 공연예술 생태계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대단히 중요한 조직이다. 그러나 그가 취임했을 당시, 한문연은 전임 회장이 선거 과정에서 정관상 금지된 재위임’(위임받은 내용을 또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행위) 문제로 사퇴 압력을 받는 등 리더십 공백과 내부 갈등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었다.

전임 회장이 사퇴를 거부하며 버티자 문체부는 감사를 통해 문제를 지적하고,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로 인해 전국의 회원사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었고, 한문연 직원들은 구조조정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회장이 공석인 비상 상황에서 이사장인 그는 조직의 중심을 잡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떠안게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이사회와 간담회를 열어 조직의 미래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문체부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은 20256, 세종시에서 열린 코카카 아트 페스티벌에서 빛을 발했다. 매년 제주에서 열리던 이 행사는 장소 문제로 공모에 부쳐졌고, 최민호 세종시장의 적극적인 유치 노력 덕분에 성공적으로 개최되었다. 권 이사장은 회장을 대신해 개회사와 폐회사를 맡았고, 2천여 명의 문화예술인과 3천여 명의 세종 시민이 운집한 단상에 올라 행사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막상 단상에 마이크를 잡고 스피치를 하려고 보니까 저 멀리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데, 그렇게 수천 명의 사람 앞에서 스피치는 처음 해봤다직원들과 힘을 합쳐 무사히 행사를 치렀다는 데 큰 보람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재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한문연이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고, 회장 선출 제도를 비롯한 조직 구조를 합리적으로 개편하여 안정적인 미래를 다지는 것이다.

 

식견이 곧 자산, 유럽 음악 축제에서 배운 삶의 방식

권기찬 이사장의 삶과 경영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음악 여행은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그는 30대 중반부터 비즈니스를 위해 해외 출장을 다니며 유럽의 파트너들과 자연스럽게 공연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한국의 접대 문화가 식사와 유흥에 집중될 때, 그들은 그를 음악회나 미술관에 초대하며 삶의 방식을 공유했다. 처음에는 접대 차원에서 시작된 경험이었지만, 그는 곧 오페라와 클래식 음악의 깊은 매력에 빠져들었다.

가서 보니까 이게 좋아 가지고, 아 이게 문화구나, 이게 근사하게 사는 방식이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는 이후 파트너들에게 얻어먹기만 할 수 없어 다음에 좋은 공연 있으면 추천해달라, 그때는 내가 돈을 내겠다고 제안하며 교대로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 각국의 유명 음악 축제를 찾아다니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상이자 취미가 되었다. 그는 독일 친구들과 뮌헨에서 오페라를 보고, 주말에는 차로 1시간 반 거리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넘어가 음악 축제를 즐겼다. 또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역시 1시간 30분 거리인 베로나의 아레나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오페라 축제를 경험하는 등 30년 넘게 예술과 함께하는 비즈니스 여행을 이어왔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개인적인 즐거움을 넘어, 그의 사업과 삶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는 문화예술의 가치를 체득한 사람으로서 한문연 임직원들에게도 항상 견문을 넓힐 것을 강조한다. “책을 통해서도 많은 걸 얻을 수 있지만, 직접 가서 눈으로 보고 부딪혀야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해외 연수나 출장 기회를 통해 최대한 많이 보고 배울 것을 독려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막혔던 시기, 그는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과거의 음악 여행 경험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화요 클래식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매주 한 편씩, 2년 반 동안 무려 250회나 연재하며 책으로 낼 만큼의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는 그의 남다른 근성과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보여주는 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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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봉사의 삶아비투스가 깃든 만년의 꿈

권기찬 이사장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철학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르침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그를 미술관에 데려가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며 예술적 소양을 키워주셨고, 무엇보다 너는 안동 권씨 양반이니, 늘 체통을 지키고 봉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그의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기업 활동으로 이룬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것을 당연한 책무로 여기며, 이전부터 보육원 건물을 지어주는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실천해왔다.

그가 유럽의 귀족들과 교류하며 인상 깊게 본 것 역시 그들의 나눔의 정신우아한 삶이었다. 그는 프랑스 귀족들이 우아한 이유가 뭘까, 그게 바로 겸손과 친절이에요. 그런데 겸손과 친절은 가정교육과 학습에서 나오는 겁니다라고 말하며, 내면의 품격을 강조했다. 또한, 은퇴 후 작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만들어 지역 사회와 즐거움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은 훗날 그가 뮤지엄319를 열게 된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이처럼 오랜 시간 그의 내면에 쌓인 경험과 생각, 즉 그의 아비투스(Habitus)’가 만년의 봉사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된 것이다.

그는 뮤지엄319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공간을 넘어, “휴식과 우아한 삶이 필요한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길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는 반 고흐의 말을 인용하며 예술가의 역할을 되새긴다.

고흐는 예술가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가치있는 일인지 알려드리기 위해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구겐하임이나 폴 게티처럼 자신의 소장품을 사회에 환원한 이들의 삶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비록 그들에 비하면 작은 규모지만, 미술관 하나 없던 안성 지역에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예술이 주는 풍요로움을 지역민들과 나누는 일에서 그는 큰 보람을 느낀다.

카메라는 항상 당신을 따르고 있다”, 청년들에게 전하는 지혜

권기찬 이사장은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성공한 기업인으로서 여러 대학 특강을 갈 때 강연에서 마지막을 항상 같은 말로 맺는다. “The camera is always following you around, at all times.(카메라는 항상, 당신 주위를 따라다니고 있다.)”. 배우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항상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함부로 처신하거나 행동 하나하나를 허투루 하지 말라는 당부다. 이는 그가 평생을 지켜온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그의 좌우명은 이태백의 시 장진주사에 나오는 천생아재필유용아(天生我材必有用我)’, 하늘이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은 필시 쓸모가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다. 모든 개인은 고유한 가치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이다.

그는 요즘 청년들에게 세 가지를 특히 강조한다. 첫째는 독서. 그는 생아자부모 성아자만권서(生我者父母 成我者萬卷書)”,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만든 것은 만 권의 책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책을 통해 끊임없이 성장할 것을 주문한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할 때 2만 권의 책을 싣고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고 할 만큼 독서의 중요성을 믿는다.

둘째는 여행을 통한 견문 확장이다. 그는 많이 다니면서 견문을 넓혀라고 조언하며, 직접 보고 부딪히는 경험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마지막으로 그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타인에 대한 존중을 꼽았다. 그는,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와 존중의 자세가 우리 사회를 더 풍요롭고 안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남을 먼저 생각하면 음주운전 안 하죠. 그게 그렇게 힘듭니까?”라며 그는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만연한 사회에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그의 삶 자체가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배움을 멈추지 않으며, 나눔을 실천하는 과정이었기에 그의 조언은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그의 여정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혜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PROFILE

현재 한국문화예술회관 연합회 이사장 웨어펀 인터내셔널 회장 )웨어펀 코리아 회장 )오페라 겔러리 회장

학력

한국 외국어대학교 학사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 경원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경력

)대통령 직속 경제대책위원회 실업분과위원 )LIBA(Luxury Imported Brands Association) 회장 )다사랑 공동체마을 후원회장 )한국경영연구원 기업가회 회장 )숙명여대 객원교수 )성정 국제음악콩쿠르 대회장 서울국제음악제 조직위원 예술의전당 후원회 이사,운영위원

수상

대통령표창 41회 무역인의 날 프랑스 국가공로훈장 기사장 수훈 이태리 국가공로훈장 기사장 수훈 한국 베스트드레서 기업인 부문 수상 한국외국어대학교 자랑스런 외대인상 수상 연세대 경영대학원 MBA 경영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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