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김현중 이사장 “생명 존중 철학을 최우선으로, 대한민국 일터의 근본적 혁신을 이끌다”
- Cover Story -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김현중 이사장
모든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며, 그 생명은 안전이 담보된 일터 위에서만 온전히 영위될 수 있다. 1987년 설립 이래 대한민국 산업재해 예방의 중추적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온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천2백여 명의 전문 인력과 전국 31개 일선 기관을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산업재해 예방 전문기관이다. ‘일하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 보호’라는 사명을 띠고 있는 이 조직에 2025년 2월, 철도 노동자 출신으로 평생을 노동자의 권익과 안전을 위해 일해 온 김현중 이사장이 취임하며 공단은 새로운 도약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현장의 척박한 현실을 오랫동안 체감해 온 그는 취임 후 전국 일선 기관과 중대재해 발생 현장을 직접 발로 뛰며 생생한 목소리를 경청하는 강행군을 펼쳐왔다. 작업자의 부주의를 탓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인간이 실수하더라도 사망이나 중상해로 이어지지 않는 설비와 시스템을 뜻하는 ‘풀프루프(Fool-Proof)’를 구축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패러다임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선진 안전망 구축부터 중소·영세사업장과 외국인, 고령 노동자 등 산재 취약계층을 위한 맞춤형 지원에 이르기까지, 김현중 이사장을 만나 일터의 미래와 경영 철학을 들어봤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목표는 중대재해를 근절하고, 모든 노동자가 다치거나 병들지 않고 안심하며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는 데 있다.
김현중 이사장의 취임 후 지난 1년간은 조직을 이끌며 탁상행정을 탈피하고, 현장 중심의 경영을 실천하는 시간이었다. 취임 후 그가 가장 먼저 집중한 일은 전국 31개 모든 일선 기관을 순회하는 것이었다. 순회는 단순한 시찰이나 의례적인 보고를 받는 자리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각 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전 직원들과 최소 1시간 이상 격의 없이 대화하고 식사를 함께하며, 자신의 철학과 경영 비전을 진솔하게 공유했다. 현장 실무자들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청취하던 중,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가장 큰 요인이 잦은 ‘타 지역 순환 전보 인사 제도’에 있다는 점을 파악했다. 그는 이러한 의견을 적극 수용하여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순환 전보를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를 개선함으로써 조직 구성원들의 호응을 얻었다.
그의 시선은 늘 위험한 현장의 최전선을 향해 있었다. 지난해 울산 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로 7명이 사망한 사고 현장에 약 열흘간 상주하며 사태 수습을 이끈 것은 그의 굳건한 현장 중심 철학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 외에도 10여 곳 이상의 중대재해 현장을 찾아 산재 예방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겼다. 그가 현장을 누비며 임직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에는 공단의 존재 이유가 명확하게 담겨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명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삶 속에서 존재하고, 그 삶은 일터에서 존재합니다. 그리고 일터는 바로 ‘안전’이라는 단단한 기반 위에서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라는 확고한 철학이다.
안전이 없는 일터는 아무 소용이 없기에, 일터의 안전을 지키고 연구하는 공단의 업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일임을 임직원들에게 전하고 있다.
‘빨리빨리’를 넘어 ‘안전이 가장 빠르다’로, 시스템이 지키는 생명
김 이사장은 대한민국이 경제 규모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사고사망만인율은 여전히 OECD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격차의 원인을 기술 수준의 부족이 아니라,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국민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진단했다. 이러한 성향이 다른 분야에서는 대한민국을 빠르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안전 분야에서는 오히려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 그는 단순히 천천히 하라고 강요하는 대신, “안전을 지키지 않고 하다가 사고가 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에 결국 늦어진다”는 논리를 내세워 “안전이 가장 빠릅니다”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켜야 한다고 역설한다.
과거 지하철이나 공공장소에서 앞다투어 밀치던 문화가 성숙한 줄 서기 문화로 정착된 것처럼, 안전 역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 금세 문화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품고 있다.
특히 산업 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흔히 ‘작업자의 부주의’를 탓하며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관행에 대해 김 이사장은 엄중한 경계심을 표한다.
고정적이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업환경에서 인간은 언젠가 반드시 실수할 수밖에 없으며, “안전 분야에서 1000 빼기 1은 999가 아니라 0”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던진다.
따라서 작업자의 실수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중대재해나 사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기계와 설비 자체에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는 ‘풀프루프(Fool-Proof)’ 철학을 그는 거듭 강조한다.
그가 직접 방문한 한 사망 사고 현장은 이 철학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슬래그를 긁어내는 작업 구역 아래로 2~3미터의 추락 위험구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기계의 이동 공정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가장 기본적인 안전 난간조차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 후 그가 현장을 다시 방문했을 때, 위아래로 움직이는 유압식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제때 안전 설비에 투자했더라면 사람이 숨지지 않았을 이 사례는, 노동자가 사고로 사망하는 원인 중 하나가 사업주의 책임 있는 선제적 안전 투자 부재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철도 현장의 산증인…노동자 생명 보호를 향한 뚝심과 ‘진인사대천명’
김 이사장의 단단한 안전 철학은 오랜 현장 경험에서 비롯됐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철도 현장에 뛰어들어 신호 제어 분야에서 땀 흘려 근무했던 그는, 현장의 위험성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다.
열차의 진로를 정확히 잡아주지 않으면 탈선 사고로 이어지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며, 철도의 핵심 가치인 ‘안전·정확·신속’을 가슴 깊이 체득했다. 이후 전국철도노동조합에서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한 그는 노동자의 ‘안전’을 최우선 의제로 삼았다. 당시 철도 현장은 안전화 등 기본적인 안전보호구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던 열악한 시절이었다. 작업자들은 천으로 제작된 작업모를 쓴 채 위험천만한 현장을 누볐다. 차량 지붕 등에서의 추락사고나 낙하물에 의한 사고를 막기 위해 그는 천 작업모를 안전모로 전면 교체하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또한 철도 교량 위에서 보수 작업을 하던 노동자들이 열차가 오면 교각 옆 좁은 대피소로 몸을 피해야 했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의 철도 교량에 안전 난간이 있는 안전통로를 설치했다.
나아가 선로 변 기구함에서 작업하던 노동자가 무의식적으로 선로에 진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안전 펜스를 현장에 도입하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의 삶을 지탱해 온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현재의 위치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는 이 철학은, 그의 원동력이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사를 취득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에 이어 67세에 마침내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조직 내부의 이견으로 노조 활동에 좌절을 겪었을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5년에 걸쳐 새로운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성장시켜 나갔다. 시련이 올 때마다 이를 더 나은 나를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여기며 꾸준히 나아간 것이다.
사각지대를 줄이는 현장 지원, ‘공공기관 청렴도 1등급의 쾌거’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사고사망자의 약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그중에서도 절반이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떨어짐, 끼임, 부딪힘 등 3대 사고 유형이 전체 사망사고의 55%를 넘고 있어, 기본적인 안전설비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에 공단은 이들 사업장에 대한 재정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종전에는 안전 설비 구축 비용의 70%만을 지원하고 나머지 30%를 자부담하게 했으나, 영세 사업주들이 이마저도 비용으로 여겨 투자를 주저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여 기획재정부를 적극 설득했다.
그 결과 10인 미만 사업장이나 50억 원 미만 소규모 건설 현장을 대상으로 안전설비 설치 비용의 최대 90%를 사업장당 3천만 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는 ‘소규모 특화 안전일터 조성지원’ 사업을 도입했으며,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인 총 433억 원을 투입하여 가장 취약한 곳부터 집중 지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안전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1,000명의 ‘안전한 일터 지킴이’를 선발하여 운영 중이다.
전국 약 300만 개에 달하는 사업장을 공단 현장 인력 1,000명 남짓으로는 감당할 수 없기에, 안전보건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퇴직자 및 노사단체 전문가를 활용하여 점검 커버리지를 확대한 것이다. 특히 산재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채 은밀히 진행되는 소규모 건설 공사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지자체 및 마을 이장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공장, 축사, 태양광 등 지붕 공사 현장을 샅샅이 찾아내고 있다.
올해부터 1,000명의 ‘안전한 일터 지킴이’ 선발해 운영
약 200명으로 구성된 전담 ‘지붕 지킴이’를 통해, 공사 시작 전 순회 순찰부터 고위험 작업 시 온종일 상주하며 점검하는 밀착형 집중 순찰까지 빈틈없는 감시 체계를 가동 중이다. 산재 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 노동자에 대한 보호망도 빼놓지 않고 있다. 전체 사고사망자 중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고령 노동자를 위해 경량 운반 대차, 시청각 보조기, 조명 시설 개선 등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작업환경 개선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아울러 언어 장벽으로 어려움을 겪는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17개국 언어로 제작된 교육자료와 안전보건표지를 제공하고, 전국 9개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에 VR 안전체험장을 운영하는 한편, 한국어에 능통한 원어민 안전 리더를 선발해 모국어 안전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륜차 종사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보험사와 업무협약을 맺어, 이륜차 50km/h 이하 준수 등 적극적인 안전운행 실천을 위해 공단의 안전교육 이수 시 보험료 할인을 제공하는 ‘체감형 혜택 보험’을 올해 1분기에 도입하였다.
전국 24개 근로자건강센터를 통해 심야 노동자들의 건강 상태를 촘촘히 체크하고 있으며, 동료의 사고를 목격한 노동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이겨낼 수 있도록 직업트라우마센터를 통한 심리적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공단의 정책들은 국민의 신뢰와 기관의 청렴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효과를 낼 수 있다. 공직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일하는 만큼, 김 이사장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목민심서’를 인용하며 공직자가 권한을 남용하지 않는 것이 청렴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공단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한 ‘2025년도 공공기관 종합청렴도 평가’에서 1등급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는 공단이 속한 56개 준정부기관 중 세 곳만이 달성한 성과로, 1987년 창립 이래 처음이며,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 중에서는 유일하다.
AI 신기술이 이끄는 과학적 산재 예방에 주력
공단은 미래형 스마트 안전망 구축을 위해 AI와 디지털 신기술을 선도적으로 접목하고 있다.
2024년 독자적으로 개발한 ‘고위험 사업장 예측 AI 모델’을 바탕으로, 재래형 사고가 빈발하는 초고위험 사업장 2,000개소를 선별하여 예방 자원을 집중 투입했으며, 나아가 ‘왜 고위험으로 선정되었는지’ 명확한 근거를 투명하게 제시하는 ‘설명 가능한 AI’로 시스템을 한층 고도화하고 있다.
그동안 분산되어 있던 산재 예방 정보를 하나로 통합한 ‘산업안전포털’을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대한민국의 산업재해 공공 데이터를 촘촘하고 정확한 데이터베이스로 완성하여 학술 연구와 과학적 예방 사업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나아가 공공기관 및 지방공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안전활동 수준평가’의 실효성도 대폭 강화했다. 공공 부문의 사업이 대부분 도급 및 하청으로 이루어지는 만큼, 원청이 단순히 입찰만 내주고 관리를 소홀히 하는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 점검을 강화한 것이다.
서류상 관리에 그치지 않도록,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직영·도급 및 발주업체 노동자 4명을 무작위로 면담하여 위험 요인을 정확히 인지하고 교육받았는지를 검증하는 방식으로 평가 기준을 바꾸었다.
청년 세대에 따뜻한 제언, “평상시에 꾸준히 준비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는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틈나는 대로 실내 스쿼트를 하며 현장을 다닐 체력을 다지는 김현중 이사장.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난과 좌절 속에 놓인 청년 세대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넨다.
“꽃도 봄에 피는 꽃이 있고, 여름과 가을, 겨울에 피는 꽃이 각각 다릅니다.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거나 남들과 비교하며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위로와 함께, “다달이 저축을 하듯 묵묵히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큰 격차가 벌어집니다”라며 하루하루의 충실한 준비를 당부한다.
그는 무엇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기 전에 어떤 일이든 부딪히며 ‘경제적 자립’을 최우선으로 달성할 것을 조언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는 단단한 맷집을 바탕으로, 인생의 고난을 내일의 더 나은 나를 위한 성장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에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지만, 평상시에 꾸준히 준비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의 확신에 찬 목소리는,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가슴에 깊고 묵직한 울림을 준다.
대한민국에서 땀 흘려 일하는 모든 노동자가 단 한 명도 다치지 않고, 매일 저녁 환하게 웃으며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그날을 위해 김현중 이사장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묵묵히 써 내려갈 안전의 새 역사를 기대해 본다.
PROFILE
△철도고등학교 졸업('75)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행정학과 학사('86)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일반행정학 석사('92)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경영학(인사·노무관리) 박사('24) △전국철도노동조합 국장 및 실장('93.07~'01.05)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08.06~'22.03) △임금채권보장심의 위원회 근로자위원('13.02~'19.10) △최저임금위원회 근로자위원('14.05~'24.05)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부위원장('20.02~'24.02) △한국공공사회산업노동조합 위원장('04.02~'25.02) △現)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25.02~현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