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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브레이징 신영식 대표/공학박사 “국내 브레이징 산업의 개척자,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기술 한류의 새 지평 열다”

  • 정진이 대표 기자
  • 입력 2026.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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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ver Story - 서경브레이징 신영식 대표/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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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는 때로 명확하고, 때로 잔혹하다. 하지만 어떤 기업의 역사는 단순히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한 산업의 태동과 성장을 고스란히 증명한다. 국내 브레이징(Brazing·경납땜) 산업의 산증인이라 불리는 서경브레이징의 행보가 바로 그러하다. 1987, 기술적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땅에 체계적인 브레이징 기술을 처음으로 소개한 신영식 대표는 지난 40년 가까이 오직 이 한 분야에만 자신의 모든 생을 매진해 왔다. ‘대한민국의 브레이징 역사가 곧 서경브레이징의 역사라는 그의 자신감은 결코 근거 없는 과시가 아니다. 전 세계 75여 개국 이상에 독자적인 장비와 기술을 수출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링 기술력을 보유한 강소기업으로 성장시킨 열정과 집념의 결과물이다. 60세가 넘은 지금도 브레이징이 자신의 유일한 취미이자 인생이라고 말하는 신영식 대표. 그가 걸어온 길은 단순한 경영의 여정을 넘어, 기술에 대한 순수한 집착이 어떻게 세계 시장을 감동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사례다. 본지는 끊임없는 도전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 한류의 정점을 찍고 있는 신영식 대표를 만나 그의 굴곡진 성공 스토리와 경영 철학, 그리고 미래 세대를 향한 따뜻한 비전을 들어봤다.

 

 

현대 산업의 거대한 메커니즘 속에서 금속과 금속을 잇는 공정은 마치 인체의 혈관을 연결하는 수술과도 같다. 아무리 거대하고 정밀한 기계라 할지라도 그 내부의 배관과 부품들이 완벽하게 접합되지 않는다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경납땜이라 불리는 브레이징(Brazing)은 바로 이 지점에서 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열쇠가 된다. 대한민국에서 이 기술의 가치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지난 40년 가까운 세월을 오직 불꽃의 예술이라 불리는 브레이징에 바친 인물이 있다. 바로 서경브레이징의 신영식 대표다. 그는 오늘날 대한민국이 가전, 자동차, 항공우주 등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게 한 일등 공신 중 한 명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의 성공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척박했던 한국의 기술 환경을 딛고 일어선 한 엔지니어의 처절한 투쟁이자, 세계 최고를 향한 멈추지 않는 도전의 기록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기술세계 최고를 향한 40년 집념의 서막

신영식 대표에게 브레이징은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즈니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삶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는 목적 그 자체였다. 그의 기술 여정이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것은 1988년의 일이다. 당시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에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미국 땅을 밟았던 그는 그곳에서 인생의 스승이자 기술적 모태가 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당대 세계 최고의 브레이징 실무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던 미스터 반다이크(Mr. Vandyke)였다. 그와의 만남은 신 대표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결정적인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72세 였던 미스터 반다이크가 보여준 그분의 52년 브레이징 기술력과 그 밑바닥에 흐르는 장인정신을 목격하며 저는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금속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열과 소재의 성질을 완벽히 다스리는 그의 손길에서 저는 예술을 보았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아주 명확하고도 거대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나도 반드시 저분처럼 세계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기술의 변방인 대한민국을 기술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라는 열망이었습니다.”

신 대표의 회고처럼, 젊은 시절의 강렬한 영감은 그를 평생 브레이징이라는 외길로 인도한 나침반이 되었다. 당시 한국의 제조 현장은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 ‘브레이징이라는 용어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고, 현장에서는 그저 은납땜이나 경납땜이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불리며 작업자의 직관이나 감에만 의존해 작업을 이어갔다. 기술의 표준화나 데이터 기반의 엔지니어링 개념은 전무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전부였다. 신 대표는 미국에서 전수 받은 선진 기술 체계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에 브레이징 기술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공학적으로 정립하여 보급하는 선구자 역할을 자처했다.

그는 창업 초기부터 국내 시장의 좁은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다. 일찍이 글로벌 시장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세계화만이 대한민국 기술이 살길이라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스스로를 브레이징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는, 삶의 모든 가치를 브레이징에 맞추었다.

남들이 골프를 치러 필드에 나가거나 호화로운 여행을 즐길 때, 나는 공장에서 새로운 브레이징 기계를 설계하고 어떻게 하면 불량율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웠다. 브레이징은 내게 고단한 노동이 아니라 영혼을 채워주는 유일한 취미이자 유희였다라는 그의 고백은, 왜 서경브레이징이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 다행히 국가에서 그 노력을 인정받아 대통령상(2004), 산업포장(2008), 동탑 산업 훈장(2020) 등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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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를 기회로 바꾼 긍정의 힘, 글로벌 75개국 이상을 매료시킨 저력

서경브레이징의 40년 가까운 역사는 영광의 기록이기 이전에 인고의 세월이었다. 1987년 브레이징을 접한 후 신 대표가 마주한 현실은 차갑다 못해 시릴 정도였다. 독보적인 기술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했지만, 이제 갓 브레이징을 시작한 브레이징 엔지니어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불신으로 가득했다. 거대 외산 장비들과의 경쟁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았다. 특히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국가적, 세계적 재난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웠다.

때로는 기술 개발을 하다가 커다란 난관에 봉착해서 몇 일 밤을 뜬 눈을 새우고, 회사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때도 있었습니다. 이럴 때 마다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서경의 기술로 세계 최고가 세계 표준으로 되어야 한다라는 확고한 자기 암시였습니다. 저는 우리 기술이 세계 무대에서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확신이 저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신 대표는 위기가 닥칠 때마다 오히려 연구개발(R&D)에 더 큰 공을 들였다. 시련은 성장을 위한 가장 좋은 비료라는 무한 긍정의 경영 철학이 발휘된 순간들이었다.

서경브레이징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기술적 우위는 바로 이 고난의 시기에 다져졌다. 당시 국내 많은 업체가 미국이나 일본, 독일의 기술을 그대로 베끼거나 핵심 부품을 수입해 조립하는 데 급급할 때, 신 대표는 독자적인 기구 설계와 핵심 부품의 100% 국산화라는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성공했다.

그 결과, 다품종 소량제품에 최적화 되고 생산성을 늘리고 접합부의 기밀성을 완벽하게 보장하는 자동 브레이징 기술, 그리고 브레이징 조건과 온도를 디지털 단위로 정밀 제어하는 자동 브레이징 브레이징 기계들이 탄생했다. 열원도 가스 화염, 유도 가열(고주파), 저항 가열 등 고객의 제품에 따라 다양한 열원을 개발하였다. 이일은 지난 세계 100년의 브레이징 엔지니어링 역사를 새로 쓰는 여정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계 제작을 넘어, 금속 공학 박사로서 브레이징 공정 전반에 흐르는 열역학적 매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고 재창조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러한 혁신적 기술력은 해외 시장에서 가장 먼저 반응을 보였다.

현재 서경브레이징의 기술 영토는 전 세계 75국 이상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수출액의 증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전 세계 각기 다른 기후와 환경, 다양한 제조 현장에서 얻은 방대한 빅데이터가 서경브레이징의 서버로 모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신 대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험은 우리 회사의 대체 불가능한 자산입니다. 전 세계 고객들의 까다로운 요구사항과 기술적 난제를 하나씩 해결해 주면서 쌓인 노하우가 경쟁사들이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서경표 브레이징 엔지니어링을 완성시켰습니다.”라고 강조한다. 위기를 기회로 치환하는 그의 긍정 에너지는 이제 전 세계 제조업의 현장을 밝히는 불꽃이 되었다.

 

기술 너머의 가치좋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경영자의 성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기업가로서 신영식 대표의 최근 최대 관심사는 무엇일까. 예상대로 그는 망설임 없이 오직 브레이징뿐이라고 답한다. 브레이징이 곧 인생이자 놀이인 그에게 이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일 것이다. 하지만 60세를 훌쩍 넘기며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기술적 정교함 외에 또 다른 깊이가 더해졌다. 그것은 바로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좋은 인간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하는 근원적이고 인문학적인 고뇌다.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도덕적 가치와 인간적 도리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됩니다. 기업가로서 이윤을 남기고 세계 시장을 점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생의 막바지에 남는 것은 결국 내가 어떤 향기를 지닌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주위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후배들에게는 신뢰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 즉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 저의 새로운 목표입니다.”

이러한 신 대표의 생각은 그의 경영 철학인 사람에 대한 예우와 맞닿아 있다. 그는 기업의 자산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공장의 기계가 아니라 그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믿는다. 서경브레이징에 유독 장기 근속자가 많은 이유는 신 대표가 직원들을 단순한 부품이 아닌, 기술의 미래를 함께 써 내려가는 소중한 동료로 대우하기 때문이다. 고객사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장사꾼의 논리를 배제한다. 고객사가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 병목 현상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밤을 새우는 그의 진심이 전 세계 바이어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그의 좌우명인 정직과 신뢰는 기술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기술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땀 흘린 만큼의 결과를 돌려준다는 믿음이다.

서경브레이징이 글로벌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의 정직함과 인간에 대한 예우를 지켰기 때문이라는 그의 회상은, 짧은 이익을 쫓느라 본질을 잃어가는 현대 기업들에게 묵직한 가르침을 준다. 기술의 완성은 결국 사람의 진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그가 40년 가까운 경영을 통해 얻은 최종 결론이다.

 

청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정상의 비결은 즉시 도전하는 용기

N포 세대라 불리며 불투명한 미래와 취업난 속에서 좌절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신영식 대표는 자신의 인생사를 반추하며 강렬하고도 따뜻한 조언을 전했다. 그는 성공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정상에 서고 싶다면 지금 즉시 도전하라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다.

신 대표는 산행의 비유를 들어 도전의 본질을 설명했다.

산 정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산을 오르기 위해 신발끈을 묶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산을 오르기 전에 모든 경로를 완벽히 파악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또 어떤 이들은 날씨가 완벽해지고 완벽한 장비를 갖출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만 해서는 결코 정상에 빨리 도달할 수 없습니다. 산 아래서 지도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길이 열리지 않습니다.”

그는 완벽한 계획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단 발을 내딛는 용기라고 거듭 강조한다. 길을 나서야 비로소 그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안개 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새로운 갈림길도 비로소 내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 역시 1988년 스물 여덟 살이라는 혈기 왕성한 나이에,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 하던 시절 무작정 기술의 본고장으로 떠났던 그 천금같은 기회를 가진 것이 오늘날의 신영식을 만들었다고 확신한다.

젊음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무한 도전권을 가진 특권의 시기입니다. 젊어서 겪는 시련과 고생은 인생에서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라, 훗날 내 삶을 단단하게 받쳐줄 가장 강력한 근육이 됩니다.”

신 대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면 어떤 고비도 넘길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청년들이 가져야 할 실질적인 삶의 태도와 기업가 정신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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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상단 세계 최초 개발한 40미터 코일 브레이징 라인

좌측 하단 세계 최초 개발한 알루미늄 듀얼 튜브 고주파 브레이징 장비들

중앙 하단 station 메모리 브레이징 기계

우측 멀티 조인트 가스 브레이징 장면

 

기술 한류의 주역, 세계 브레이징 표준을 선도하는 서경의 기술력

서경브레이징의 기술력은 이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브레이징 산업의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로 자리매김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수백 년의 제조 역사를 자랑하는 강국들의 장벽을 허물고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던 결정적 비결은 무엇일까?

신 대표는 그것을 단순한 기계 제작이 아닌, 생산 공정 전체를 창조하는 토털 브레에징 엔지니어링 솔루션역량에서 찾는다.

우리는 단순히 기성품 장비를 찍어내 파는 회사가 아닙니다. 고객사의 공장에 직접 들어가 브레이징 라인을 분석하고, 접합할 소재의 분자 구조와, 접합재 상태, 목표 생산 수율 등을 정밀하게 고려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최적화된 브레이징 시스템을 맞춤형으로 설계합니다. 고객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수준을 넘어, 아예 가려움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이 서경브레이징의 존재 이유입니다.”

서경브레이징이 보유한 500개가 넘는 세계 브레이징 원천 기술과 40개가 넘는 특허들은 모두 현장의 난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피와 땀으로 일궈낸 성과물이다. 특히 최근 4차 산업혁명과 맞물려 제조 현장이 스마트 팩토리로 급격히 재편되는 흐름 속에서 서경브레이징의 기술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과거에는 숙련된 장인의 손끝 감각이나 눈썰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했던 브레이징 공정을, 신 대표는 정밀 온도 제어를 통한 브레이징 조건을 확립하여, 이를 AI 기반의 데이터 자동화 시스템으로 구현해냈다.

이러한 혁신적 역량은 전 세계적인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즉 내연기관에서 전기차(EV)로의 전환과 맞물려 폭발적인 수요를 만들어내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냉각 시스템이나 수소차의 연료 전지 배관 등은 극도의 정밀함과 기밀성을 요구하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서경브레이징의 고도화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대한민국의 브레이징 기술이 전 세계 자동차, 가전, 항공우주 산업의 심장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벅찬 자부심 을 느낀다라고 밝혔다. 기술 한류는 이제 문화의 영역을 넘어 제조의 기초가 되는 금속 접합 기술에서도 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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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브레이징 1공장 전경

 

멈추지 않는 혁신의 여정, ‘대한민국 브레이징의 미래를 설계하다

인터뷰 말미에, 신영식 대표는 서경브레이징이 앞으로 그려갈 원대한 미래 청사진을 담담하면서도 힘 있는 어조로 제시했다. 그의 꿈은 서경브레이징을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아니다. 전 세계 브레이징 엔지니어들이 가장 선망하고, 관련 기술과 정보가 끊임없이 순환되는 글로벌 브레이징 기술 허브로 거듭나는 것이 그의 최종적인 지향점이다. 그는 이미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다. 매년 수많은 해외 바이어들이 장비 구매를 넘어 서경의 신 개념 브레이징 기술을 배우기 위해 한국의 공장을 방문하며, 신 대표는 자신의 40년 가까운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고 있다.

또한 그는 평생을 바쳐 일군 기술의 명맥이 끊기지 않도록 후진 양성에도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장에서 몸소 부딪히며 체득한 실무 지식과 수만 건의 실패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매뉴얼화하여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미 기록을 남기기 위하여 여러권의 브레이징 관련 서적을 집필했다.

제가 미스터 반다이크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나 인생의 나침반을 발견했듯, 저 또한 누군가의 인생에서 기술의 길을 열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선배가 되고 싶다라는 그의 말에는 진정한 장인의 품격이 묻어났다.

신영식 대표에게 은퇴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고 멀기만 하다. 여전히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운 기술적 아이디어가 떠올라 설레고, 현장의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서 안식을 찾는다는 그는 영락없는 현역 엔지니어다. 그에게 브레이징은 단순히 금속과 금속을 붙이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세상과 소통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며 인류 산업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신성한 의식이다.

도전정신이 결여된 삶은 멈춘 기계와 같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고독하지만, 그 끝에서 맛보는 기쁨은 함께 땀 흘린 동료들과 고객사가 있기에 더욱 찬란한 것입니다.”

신영식 대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이 메시지는 본질보다는 겉모습에 치중하고, 노력보다는 요행을 바라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가르침을 준다. 서경브레이징의 불꽃은 앞으로도 식지 않을 것이며, 그 불꽃이 타오르는 한 대한민국 기술의 영토는 전 세계로 끝없이 확장될 것이다. 40년 전 한 청년의 가슴 속에서 시작된 작은 열망이 이제는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산업의 근간을 지탱하는 거대한 불꽃이 되었다. 신영식 대표의 열정 가득한 여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그가 써 내려가는 기술 한류의 드라마는 이제 막 새로운 막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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