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리셋》 박숙정 저자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너무 잘하고 있어서 흔들린다”… 3040 커리어 정체성에 던지는 질문
- 저자 인터뷰 - 《워크리셋》 박숙정 저자

30여 년간 HRD와 커리어 현장에서 수많은 직장인을 만나온 박숙정 저자는 한 가지 장면을 반복해서 목격했다. 일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왔고 조직에서 인정받아 온 사람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커리어 앞에서 방향을 잃는다는 것이다. 20년 가까이 한 회사에서 일한 40대 중반의 직장인이 “저는 이것밖에 해본 게 없습니다”라고 말했던 순간을 그녀는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왔다. “정말 그것밖에 해보지 않은 것일까요? 아니면 자신의 20년 경험을 회사 이름과 직책, 담당 업무로만 설명해 왔기 때문에 정작 자신이 가진 역량과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박 대표는 현재 클립스컨설팅을 통해 대기업·공공기관에서 WorkReset Method 기반의 커리어 재설계 프로그램과 진단 기반의 코칭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기업에서 도입 중인 WorkReset 프로그램은 이 책의 방법론을 현장 교육으로 구현한 것이다. 또한 프로틴 커리어(Protean Career)가 직무몰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그녀가 8월 7일 펴낸 책이 《워크리셋》이다. 박숙정 대표를 만나 책에 담긴 문제의식과 집필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숙정 저자는 《워크리셋》이 단순한 이직이나 퇴직 준비서가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에게는 변화 속에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주도하는 힘을, 기업에는 구성원이 스스로 변화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책이라는 것이다. AI와 디지털 기술이 직무의 경계를 바꾸는 시대, 조직의 허리를 담당하는 30대와 40대는 자신의 성과뿐 아니라 후배 육성과 리더 역할, 조직 변화까지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그녀는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의지 부족이나 단순한 번아웃이 아니라, 외부환경과 조직은 빠르게 변하는데 개인이 일을 바라보는 기준은 과거에 머물러 있을 때 나타나는 혼란이라고 진단한다.
책은 이를 ‘자기인식-자기결정-자기행동’이라는 세 단계로 풀어낸다.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이해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다음 방향을 선택한 뒤, 이를 현재의 일과 경력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이다.
조직이 개인의 커리어를 일방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가치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는 프로틴 커리어 개념을 이론적 토대로 삼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주도한다는 것은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맡은 일의 의미를 다시 발견하고, 변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AI가 사람의 업무를 대신하게 될수록 기술이 아니라 그 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독자는 30대 후반에서 40대의 미드커리어 직장인이다.
“일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게 되었을 때, 일을 못 해서가 아니라 잘하고 있는데도 앞으로의 방향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바로 이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10년에서 20년 가까이 조직 생활을 하며 상당한 경험과 전문성을 쌓은 이들이 역설적으로 그 익숙함 때문에 “제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것을 ‘커리어 정체감’의 문제라고 부른다. 자신을 ‘○○팀장’이나 ‘○○업무 담당자’로만 이해해 온 사람은 그 직책이나 부서가 사라지면 정체성까지 흔들릴 수 있지만, 자신이 어떤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인지 아는 사람은 역할이 바뀌어도 경험을 새로운 일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3040의 커리어 리셋이 지금까지 쌓아온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경험의 재해석’이라고 강조한다.
“나는 그동안 어떤 문제를 해결해 왔는가, 그 과정에서 어떤 강점을 만들어왔는가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업무가 단순한 루틴이 아니라 전문성을 축적하는 경험이 되고, 후배를 가르치는 일이 리더십을 만드는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핵심 독자층은 CEO와 HR 담당자, 조직의 리더들이다. 조직의 허리인 3040이 겉으로는 성과를 내면서도 자신의 성장 방향을 잃고 있다면 이는 개인의 고민에 그치지 않고 조직에 대한 몰입과 지속적인 성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갤럽(Gallup)의 2024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 중 실제로 일에 몰입하고 있는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나머지 77%는 일을 하고 있지만 방향을 잃거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상태다. 그녀는 이 수치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고 본다.
“기업들은 오랫동안 커리어 교육을 퇴직이나 전직이 가까워졌을 때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흔들리기 시작한 뒤에는 이미 늦습니다. 가장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30대 후반, 40대 초반부터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조직의 경쟁력입니다.”
AI 전환이 가속화되는 지금, 직무역량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그녀의 진단이다. 구성원이 스스로 커리어의 주도권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 그것이 기업이 사람에게 투자해야 하는 새로운 방식이라는 것이다.
“커리어 관리는 흔들린 다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잘 일하고 있을 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식보다 질문을 남기고 싶었다”
그녀가 책에 가장 많이 남기고 싶었던 것은 지식보다 질문이었다. 커리어에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하나의 정답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책을 쓸 때 ‘무엇을 쓸까?’보다 ‘누구에게 말할까?’를 먼저 생각했다고 말한다. 10년, 15년, 20년을 열심히 일해온 한 사람을 떠올리며 그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듯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충분히 잘해왔습니다. 이제는 더 열심히 달리는 것보다 잠시 자신의 방향을 한 번 들여다볼 때입니다.”
책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는 “나는 왜 이 책을 쓰려고 하는가, 내가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꼭 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이 책을 읽은 단 한 사람이 무엇을 다르게 생각하거나 행동했으면 하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에 먼저 답해보라고 조언했다. 책의 이론적 토대인 프로틴 커리어는 보스턴대학교 더글라스 홀(Douglas T. Hall) 명예교수가 1970년대부터 발전시켜 온 개념이다. 오랫동안, 이 이론을 연구해 온 그녀는 홀 교수와 직접 연결되어 책에 대해 소통하고 추천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을 특별한 경험으로 꼽으면서도, 더 의미 있게 여기는 것은 40~50년 전 시작된 문제의식을 지금 한국의 직장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시 전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책 출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아온 전문적인 내용을 독자들이 자신의 이야기처럼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었다. 반대로 가장 큰 보람은 책 한 권을 출간했다는 것보다, 격변하는 환경에서 ‘개인의 커리어를 스스로 관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질 수 있게 됐다는 점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책이 나온 뒤 “이직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내가 지금 일에서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게 됐다”라는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기뻤다고도 전했다.
그녀가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한국 기업의 커리어 개발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퇴직이나 전직을 앞두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30대와 40대부터 자기 일을 돌아보고 스스로 성장 방향을 만들어가는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기업에서 커리어 교육은 퇴직이나 전직이 가까워졌을 때 시작됐지만, 그보다 먼저 조직 안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하고 있을 때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무엇을 잘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이다.
“앞으로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까보다, 어떤 변화가 오더라도 나는 무엇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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