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 김형주 책임연구원 “좋은 기술만으로는 시장이 열리지 않는다”… 기후기술 ‘개발 이후’를 설계하다
- Leaders lnterview -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 김형주 책임연구원

좋은 기술을 개발하는 것과 그 기술이 시장에서 성공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 정책연구본부 글로벌전략센터에서 기후기술 국제협력과 글로벌 확산 전략을 연구하는 김형주 책임연구원은 이 간극을 메우는 일에 오랫동안 매달려 왔다. 산업 현장의 환경·에너지 컨설팅에서 출발한 그는 2014년 국가녹색기술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뒤 기후기술 정책과 국제협력, 사업 개발을 넘나들며 기술과 시장을 연결하는 연구를 이어왔다. 최근에는 캄보디아 전기차 배터리 전주기 통합관리체계 구축 사업이 KOICA 사업으로 최종 선정되는 성과도 냈다. 국내외 기후기술 정책과 국제협력 현장에서 기술의 실증과 사업화, 탄소감축과 시장 확산을 연결해 온 김형주 책임연구원을 만나 기후기술 국제협력의 현재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는 탄소중립과 녹색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기후기술 정책과 전략을 연구하고, 국내의 우수한 녹색기술이 실제 산업과 사회에 적용되고 해외로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김형주 책임연구원은 이곳에서 좋은 기술이 실증을 거쳐 제도와 금융, 시장으로 이어지고 다시 해외로 확산하는 구조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2014년 합류 이후 국제전략부장, 기후기술협력센터장, 정책연구부장, 선임부장(부기관장) 등을 맡으며 연구뿐 아니라 정책기획, 국제사업 개발과 조직운영도 두루 경험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기후기술이 연구실을 넘어 실제 현장과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일”이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요즘 그가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기후기술의 ‘실증 이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다. 한국에는 배터리, 수소, 에너지 효율 등 경쟁력 있는 기술이 많지만, 좋은 기술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실제 시장에서 확산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일 것이다. 기술이 확산하려면 실증뿐 아니라 규제와 표준, 금융, 수요처, 비즈니스 모델이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서 그는 기술-정책-금융-시장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는 데 특히 관심을 두고 있으며, 국제적으로는 국제개발은행이나 호라이즌 유럽 등 국제 재원을 활용한 공동연구와 실증, 개발도상국 에서 한국의 기술과 제도, 금융을 함께 확산시키는 방안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삼성SDS 수석컨설턴트로 근무하던 그가 국책연구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계기도 이와 맞닿아 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현장에서 경제성이 없다면 확산하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고, 기업과 산업 전체가 움직일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생겨 2014년 국가녹색기술연구소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다. “기업이 실제로 움직일 것인가, 투자할 이유가 있는가.” 그는 이런 질문들을 연구의 바탕으로 삼는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국제감축과 탄소시장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파리협정 체제하에서 기후기술의 실제 감축 성과를 어떻게 신뢰성 있게 측정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할 것인가다. 탄소크레딧은 단순히 탄소를 줄였다고 주장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감축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사업이 없었을 경우와 비교해 추가적인 감축이 이루어졌는지를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과거에는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을 만든 뒤 마지막 단계에서 탄소배출권을 붙이려는 접근이 많았다면, 그는 사업을 기획할 때부터 이 기술이 얼마만큼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는지,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기후기술이 해외에 확산하면서 감축 성과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그 성과가 다시 사업의 경제성을 높여주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원조가 아니라 “함께 만드는 시장”
그가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상호이익형 기후테크 협력 모델’은 단순히 한국의 좋은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이전하는 모델이 아니다. 그동안 많은 국제협력 사업은 장비를 설치하고 교육을 한 뒤 종료되는 경우가 많았고, 기업으로서는 첫 실증 레퍼런스가 없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사업을 설계할 때부터 사업이 끝난 뒤에도 현지에서 계속 작동할 수 있는지를 함께 보고, 상대국 정부와 문제를 공동으로 정의한 뒤 기술을 현지에서 실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제도와 표준, 운영 인력까지 구축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는 재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그랜트성 ODA를 기술의 종착점이 아니라 해외에서 처음 검증되고 제도화되어 시장으로 넘어가는 출발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 같은 국제개발은행, 녹색기후기금과 같은 기후금융, 민간 자본도 초기의 기술·시장 위험을 낮추고 후속 투자를 끌어내는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공공재원이 모든 사업비를 계속 부담하는 구조가 아니라 초기 실증과 제도 구축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을 먼저 낮춰주고, 그다음 단계에서 개발금융과 민간투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발도상국은 기술을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제도와 역량을 확보하고, 한국도 해외 실증 레퍼런스와 후속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된다.
이러한 협력 모델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캄보디아 전기차 배터리 전주기 통합관리체계 구축 사업이다. 연구팀이 제안한 2단계 본사업이 올해 9월 2일 KOICA 사업으로 최종 선정됐으며, 사업 규모는 약 500만 달러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한 캄보디아에서는 앞으로 사용 후 배터리가 빠르게 증가하는데, 배터리가 언제 생산되고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관리하는 이력 관리, 성능과 안전성을 판단하는 성능평가, 재사용할 것인지 재활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체계가 함께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번 사업의 특징은 특정 장비 하나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 이력관리-성능평가-안전관리-재사용·재활용으로 이어지는 전주기 관리체계를 함께 구축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기술과 경험을 일방적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정부와 전문가들이 향후 스스로 제도를 운용할 수 있도록 정책과 표준, 인력양성도 함께 추진한다. 그에게 이 사업은 단순한 ODA 프로젝트라기보다, 기술 실증에서 제도와 표준, 인력양성, 후속 시장까지 연결하는 패키지형 국제협력 모델을 실제 현장에서 구현하는 사례다.
탄소는 이제 환경을 넘어선 경제 변수
CBAM 등 글로벌 무역장벽과 RE100 대응을 위해 국내 산업의 녹색 전환 전략을 수립해 온 그는, 탄소를 더 이상 환경 문제만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탄소는 이제 무역, 공급망, 투자, 제품경쟁력을 결정하는 경제적 변수인 것이다. 기업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정확한 탄소 데이터 관리 역량이다. 어느 공정에서 얼마만큼의 탄소가 발생하는지, 공급망에서 어떤 배출이 발생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에너지 효율 향상과 공정 전기화, 저탄소 원료 전환 등 실제 감축이며, 세 번째는 이를 비용이 아니라 경쟁력 확보 전략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CBAM이나 공급망 탄소 규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면 오히려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경쟁국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국제감축과 탄소시장 관련 정책연구와 정부 자문 과정에서도 그가 일관되게 강조해 온 것은 기술개발과 실제 탄소감축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기술을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실제 감축도 시장 확산도 일어나지 않으며, 실증과 사업화, 금융, 규제와 제도까지 연결돼야 기업과 시장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는 한국과 유럽의 기후테크 공동연구 및 실증협력 확대, 그리고 캄보디아 사업과 같은 개발도상국 대상 패키지형 국제협력 모델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독일 부퍼탈 기후·환경·에너지 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유럽 연구기관들과의 공동연구도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탄소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직면한 과제에 대해서는, 배출권을 단순히 구매하는 상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술과 공급망을 활용해 고품질의 감축 사업을 직접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기술과 현장을 연결하는 ‘가교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선진국과는 차세대 기후기술을 공동개발하고, 개발도상국과는 이를 현지에서 실증하면서 제도와 표준, 인력을 함께 구축해 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래 붙들고 갈 문제를 먼저 찾아라”
기후기술과 국제협력 정책을 연구하며 그가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연구 결과가 보고서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때다. 한국에서 개발된 기술이 해외 현장에서 실증되고, 그 결과가 상대국의 정책이나 제도로 이어지며, 다시 기업의 사업 기회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면 연구자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도 이 과정이다. 연구자, 기업, 정부, 금융기관, 국제기구는 각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판단 기준이 상당히 다르다. 연구자는 기술적 우수성을 이야기하고, 기업은 경제성을 보고, 금융기관은 위험을 보고, 정부는 정책효과와 공공성을 본다. 그래서 그는 기후기술 국제협력 연구자의 중요한 역할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언어를 번역하고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일하면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겸손과 주도성이다. 그는 이 둘이 서로 반대되는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겸손은 뒤로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든 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이며, 충분히 듣고 판단한 뒤에는 방향을 정하고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리더의 역할을 ‘정답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문제가 중요한지 먼저 보고 판을 만들고 끝까지 끌고 가는 사람으로 본다. 앞으로도 국내에서는 좋은 기후기술이 실증과 투자, 시장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해외에서는 한국 기술이 국제공동연구와 현지 실증을 넘어 제도와 표준, 금융, 후속 시장까지 연결되도록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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